목록송기현의 살림신학 (22)
송기현의 살림운동
기독교와 교회에서 ‘메시야(Μεσσίας)’나 ‘구주(σωτήρ)’라는 칭호와 ‘구원(σωτηρία)’이라는 추상명사 그리고 ‘구원하다(σώζω)’라는 동사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음으로 해서 독특한 기독교적인 의미를 지녀왔다. 우리가 신앙..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 제국주의는 가고 이제는 온 인류와 세계가 사랑과 용서로 공존과 공영과 공생을 하는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냉전이 인류를 분열시키던 시대는 끝이 났으나 21세기에는 각 민족, 종교, 문명권간에 따른 인류의 더욱 근본적인..
곽노순은 「꽃과 바위와 구름 그리고 원자와 우주의 파노라마 -창조세계의 신학적 감상」에서 “우리들이 피차 얼굴 모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원자적인 질료(質料)는 털혹의 차이도 없어, ‘내 몸’의 재료와 ‘네 몸’의 재료를 교체할 수 있다. 누구나 동일한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만 ..
불행하게도 지나간 여러 세기 동안의 기독교나 교회나 성서나 신학은 보수나 정통이나 전통이나 유전의 독선 때문에 미움과 증오 속에서 적대시와 원수시를 버리지 않았고 이단시를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는 헬레니즘의 영향과 근대 사회의 이분법적(二分法的)인 논리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그..
지난 세기말을 보내면서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주는 것은 기독교 신학자에게서조차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 그리고 더 나아가 신의 죽음까지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신학과 신앙의 위기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재..
인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종말적인 구원의 역사는 어느덧 발전의 세기였으며 또한 대결과 갈등의 세기였던 20세기의 그 지친 자락을 접고 2천 년대의 새 밀레니엄(New Millennium)으로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대 전환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또 다른 밀레니엄을 향하여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밀레니엄이 교차하는 전환기에 즈음한 기독교와 교회는 신학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임을 표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천년을 희망차게 엮어가기에는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가 이러한 원리와 원칙을 너무도 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