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길과 진리 생명 본문
불행하게도 지나간 여러 세기 동안의 기독교나 교회나 성서나 신학은 보수나 정통이나 전통이나 유전의 독선 때문에 미움과 증오 속에서 적대시와 원수시를 버리지 않았고 이단시를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는 헬레니즘의 영향과 근대 사회의 이분법적(二分法的)인 논리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그리고 복음을 복음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또다시 복음을 율법으로 대한 결과인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적대시와 원수시와 이단시를 버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가 한 종말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원수가 따로 있고 적국이 따로 있었으나 이제는 국경이 없어지고 경계도 지경도 없어진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피차가 지구촌(地球村)에서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인류는 세계화를 넘어서 우주화되고 있다. 인류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인류는 자기만, 우리만 살기 위한 독생(獨生)과 독존사상(獨存思想)으로 저마다 이웃을 죽이고 남을 죽이며 적을 죽이고자 하여 각종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다가 이제는 영원히 함께 멸망할 가공의 재앙이 될 핵무기까지 만들어 놓은 지 오래 되었다.
오늘날 인간을 살상하기 위해서 세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약 5만개(주요국가별 핵탄두 보유현황은 영국 400기, 프랑스 510기, 러시아 28,240기, 중국 425기, 미국 12,070기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도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북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도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폭발력의 총계는 TNT화약으로 환산해서 약 2백억t에 달하고 있으며, 이것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폭발력의 160만 배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러한 폭발력은 여자와 어린아이를 모두 포함해서 전 세계의 시민이 4t씩의 화약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고 근래에는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가세하여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지경에 있다. 그리고 북한의 핵 의혹에 대한 세계의 이목이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우리 한반도는 남북이 정상회담을 하고 이산가족이 상호방문을 하고 미전향장기수들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송을 하며 금강산관광이 해로와 육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등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으므로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제 인류는 화해하지 않으면 피차 다 멸망하게 될 위기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한반도라고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방해하고 왜곡을 하고 비방을 하는 극보수주의자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인류는 그 동안 끊임없이 분쟁과 전쟁을 해 왔었다. 그러나 과거의 분쟁과 전쟁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매우 국지적(局地的)이었으며 그 피해도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제는 전멸의 위기에 있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전쟁용 살상무기들과 핵의 공포는 우리에게 전멸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오전 8시 13분), 인구 31만이 사는 일본 히로시마에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히로시마는 잿더미가 되었고 노인, 젖먹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11만 명이 숯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수 십 년 후 사람들의 부푼 꿈을 깨게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이다. 체르노빌 원전의 단순 사고로 8,000-10,000명의 사람들이 죽고 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치명적으로 감염이 되었으며, 체르노빌 어린이들은 장애아로 태어나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며, 그 지역은 패쇠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낙진은 유럽에까지 날아갔으며 그 결과가 장차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근래에도 방사선물질 대량누출사고는 구미의 핵무기공장에서 8건, 구 소련에서 12건, 일본에서 1건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프루토늄의 반감기(半減期)가 무려 2만 4천년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핵이 전쟁으로 사용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는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핵전쟁은 전 인류를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핵의 겨울(Nuclear Winter)이라고 하는 지구 상공의 오염과 격변을 가져오며, 모든 생물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고, 지구를 원초적 불모상태로 전환시켜버릴 위험과 대재앙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수소탄이 나오고 중성자탄, 살인광선무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사용된다면 인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자명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점차 광범위한 기근과 오존층 파괴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녹고 있는 만년설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기상적 재난은 핵의 위험만큼이나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또 다른 위협이다. 어쩌면 미래사회에 있어서 가장 큰 인류의 문제는 핵보다는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인간의 생존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지나친 이기심과 욕심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오는 위기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의 행동에 의해 미래의 인류가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의 태도와 자세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인재(人災)로 인하여 자멸(自滅)할지도 모르는 전망까지도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로 해석하면서 정당시를 해야 하는가? 인재까지도 하나님의 구속사의 일환이라고 당연시를 해야 하는 것인가?
인류와 세계는 현재와 같이 구원의 심각성을 필요로 하는 때가 또다시 없었다. 인류의 생존과 역사는 쉴 세 없이 쏟아져 내린 홍수로 범람의 위기 앞에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댐과 같다. 댐이 터지든지 댐을 넘든지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밀레니엄이 교차하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종말성(終末性)은 하나님이 성육신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했던 초기의 종말성과 동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해산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분명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의 세상과 너무나도 유사하지 않는가? 무엇이 이렇게 엄습해오는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무엇이 이처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이 종말적인 상황에서 구원의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정답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다. 구원의 복음의 본질은 “서로 사랑”에 있다. 사랑의 원자탄이 터져야 인류가 산다. 필자가 목사안수를 받을 당시에 시무했던 교회가 손양원목사가 시무 중에 순교한 교회인 여수애양원였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병환자로 구성된 교회에서 그들의 고름까지 입으로 빨아내는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며 섬겼다.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식으로 삼았으며 그러한 사랑으로 끝까지 목양지를 떠나지 아니하고 예배당 기도실에서 기도하다가 이념전쟁이었던 6.25사변 때 순교까지 했던 사랑의 원자탄이었다. 이런 사랑의 원자탄이 무수히 터질 때 살림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른 길과 진리와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서로 사랑”이야 말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할 하나님의 나라는 한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이다. 그 한 원리라는 것은 바로 “서로 사랑”이다. 이제 이 종말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생명과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정답인 것이다.
'송기현의 살림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신학의 근본 자료 (0) | 2006.06.12 |
---|---|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한 참 구원 (0) | 2006.06.08 |
창조와 구원의 원리인 "서로 사랑" (0) | 2006.06.05 |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관계이다. (0) | 2006.06.02 |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0) | 2006.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