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울어야 삽니다 본문

살림운동

울어야 삽니다

유앙겔리온 2006. 2. 13. 23:58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웃음과 울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는 낯에는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은 우리가 많이 들어보지만 "애통하면 복이 온다. 울어야 복 들어온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통하는 것은 할 수만 있으면 없었으면 하고, 있어도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 웃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흥행사들은 갖가지 웃음을 팔아 적지 않는 수입을 올립니다. 그런가하면 요즈음 들어서 웃음의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음치료, 웃음요가, 웃음 다이어트 .... 등등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웃음 공원과 웃음 클럽이 있고, 일본에는 웃음협회가 있으며, 미국에는 웃음교회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울음은 그렇게 소중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우는 자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상난 집에서나 울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는 사람을 보면 "초상났는가 보지?" "청승맞다."라고 합니다. 슬퍼하는 자들은 분위기를 망치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 쯤으로 취급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사람이 원망과 증오를 갖게 되는 원인은 간단합니다. 눈물을 흘려야할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요, 애통해야할 사건에 애통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들어서 강력범죄사건이 늘어나고 있고 그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곳에는 눈물을 흘려 회개할 줄 모르는 파손된 인격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전혀 반성없이 놀이나 유희처럼 자신의 범죄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사람,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법정으로 웃으면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나 반성을 하고 죄책감에 짓눌러 어찌할바를 몰라 괴로워하는 사람을 볼 때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지 하면서 동정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슬퍼하며 스스로 애통할 줄 아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의 아주 건강한 의식 작용입니다. 당연히 고통을 느껴야 할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에 아픔이 있어야할 사람이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하며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심판 받은 불쌍한 영혼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참으로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아파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악한 것의 순환 고리를 끊어버리고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눈물은 우리의 상한 감정과 상한 영혼을 씻겨주는 치료의 역할을 해냅니다. 그래서 눈물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나 무가치함"이 아니라 복되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입니다. 나에게 정말 있어야 될 것은 없고, 없어야 될 것이 있는 것을 탄식하여 슬퍼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성품이며 품격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없어야 될 것이 잔뜩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교만, 자랑, 용서하지 못하는 원망, 욕심, 집착, 시기, 미움, 미성숙, 경솔함 ....... 등등으로 이런 것들이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사람들과의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정말 있어야 할 것들 사랑, 겸손, 은혜, 용서 ...... 등등 이런 것들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인하여 우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눈물로 밤을 새워본 적이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토마스 왓슨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는 낙원에 이를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천국은 메마른 눈으로 못 들어가며 젖은 눈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눈은 너무 메말라 있음이 문제입니다. 눈물을 회복해야 합니다. 울어야 삽니다. 울어야 치료가 됩니다.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살림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리 길과 백리 길  (0) 2006.04.05
개꿈과 참꿈  (0) 2006.02.27
개띠의 해  (0) 2006.01.29
사막과 사막화의 해에 붙여  (0) 2006.01.07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합니다  (0) 200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