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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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자유인의 부자유

유앙겔리온 2004. 4. 6. 07:20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이다. 고난 주간은 자유인이 부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아니하고 할 수 없지만 하는” 행위인이 되는 절기이다. 내 뜻대로가 아닌 네 뜻을 먼저 생각하는 기회이다. 내 육정에 끌리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절기인 것이다. 일상적인 크리스찬의 삶이 언제나 그래야 하겠지만 이 고난 주간은 더욱 그러하다. 고난 주간은 한마디로 조금씩 불편을 감당하는 기회인 것이다.


     지금껏 조금씩 불편하게 산다는 것이 미덕인줄인 줄 알기에 몇 번이고 시도하다가 멈추어버렸거나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조금 불편하게 살기”를 이 때라도 해보면 좋겠다. 절기는 우리에게 특별함을 주지 않던가? 특별한 감정과 의식으로 조금씩 불편을 감당해보자. 좀 덜 자고, 좀 덜 먹고, 좀 덜 버리고, 좀 덜 타고........, 그리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참고, 좀 더 많이 걷고, 좀 더 섬기며 봉사하는 시간들을 가져보자. 이렇게 하는 것은 편함을 추구하던 삶의 원리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살리는 운동인 것을..........


     조금씩 불편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나도 살리지만 타인도 살리고 지구와 우주를 살리는 것이다. 인간이 좀 더 편해지려는 소욕과 탐심과 집착이 자신도 병들게 하고 남도 죽이게 하며 지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위험성을 가져올 수도 있게 한다. 주님은 자신이 고난당하심으로,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셨다. 자신이 불편한 자리에 있음으로 인해서 세상을 구속하시며 구원하신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엘리어트는 인간은 알게 모르게 5가지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는데 첫째는 자기 사랑의 감옥이며, 둘째는 근심의 감옥, 셋째는 과거를 생각하는 향수의 감옥, 넷째는 남의 것만 좋게 보이는 선망의 감옥, 다섯째는 증오의 감옥이라고 했다. 이런 감옥에 갇혀서 자유를 잃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쉬운 일이며 안타까운 일인가? 이런 부자유함은 결코 이로운 것이 아며 살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으로부터는 참으로 자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감옥에서부터는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스스로 불편함을 참아내는 부자유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가하나 스스로 가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자유인의 부자유인 것이다. 이것이 상생을 하게하며 모두를 살리는 것이며 지구호의 수레바퀴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게 하는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