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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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해거리

유앙겔리온 2003. 8. 6. 11:30



우리 집 앞마당엔 분재와 분재를 만들기 위한 소재 분들을 합해 대략 600여개 넘게 자라고 있다. 그 중엔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선물해주는 분재들이 있는데 이 분재들 중엔 때때로 해거리를 통해서 내게 좋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 교훈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면 나무들이 해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나무들은 때때로 사람들의 기대하고는 달리 한 해의 꽃피우기와 열매 맺기를 단호하게 거부할 때가 있다. 나무가 이처럼 꽃피우기나 열매 맺기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을 우리는 해거리라고들 한다. 나무가 해거리를 감행하는 것은 지난해에 과도하게 지불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망가진 대로 욕심을 부려 꽃과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나무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욕심을 덜어내고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나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하는 것이다. 지난 영광을 자랑치도 아니 하며 다른 나무의 꽃 피고 열매 맺음을 시샘하지도 아니 하고 스스로 겸손히 다음 해를 준비하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게 많다. 해거리를 통하여 이미 손상된 뿌리며 가지들 그리고 온갖 기관들을 수리하고 그 기능이 최고의 상태에 이르도록 예비하고 보충을 한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아니하고 꽃피고 열매 맺기를 다음 해로 늦추는 것이다. 결코 서두름이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꽃과 열매가 없다고 외면하고 푸대접하는 것을 고스란히 감내한다. 그 인내가 부럽다.
인생도 해거리가 필요하다. 재충전, 재무장의 기회가 필요하다. 과감히 꽃과 열매를 포기하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더 아름답고 더 풍성한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간의 외면과 푸대접으로 인한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달게 감당하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 힘들어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필부와 범부들의 자살뿐 아니라 사회적 유명인사들도 거기에 가세하는 경향에 있다. 며칠 전에는 현대가의 실제적인 후계자인 정몽헌씨가 자살을 했다. 지난날의 영광에 비하면 자본을 다 잠식해 버린 기업들과 검찰에 불려다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서였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삶을 옥죄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나무에게서 배우면 어떨까 싶다. 나무는 그럴 때 해거리를 한다. 아무 꽃도 아무 열매도 맺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한쪽 구석에서 안식의 시간을 갖는다. 상처 난 것을 감싸고 탈진한 자신을 치켜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음 해에 꽃 피고 열매 맺을 찬란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해거리하는 나무를 닮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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