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익숙한 것들로부터 이별 본문
누구나 익숙한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익숙한 것들에 지나치게 집착을 함으로써 익숙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괜히 경계하고 불안해하며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나 익숙한 것들로부터 이별하지 아니한다면 새로운 역사는 요원한 것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 습관화되고 일상화된 것들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거나 시도하지 않는다고 하면 발전은 없다. 일률적이고 고정되고 정형화된 틀만 고집하고 집착한다면 식상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곡예사가 그네 타기 곡예를 할 때 잡고 있는 그넷줄을 놓지 않으면 다른 그네를 잡을 수가 없다. 과감히 잡고 있는 줄을 놓아버려야 다른 줄을 잡아서 묘기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익숙한 것들로부터 이별을 고하는 이별식을 해보면 어떨까. 익숙한 것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를 있게 한 공로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한다면 익숙한 것들이 장애물이 되고 방해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아니면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면 배설물처럼 버리지 아니하면 안 된다.
고장 난 비행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비행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조종석이 죽음의 함정으로 변했을 때에도 익숙지 않는 낙하산보다는 손에 익숙한 조종석을 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싶은데 우리 생활가운데서도 놓아버리면 살 수 있는데 놓지 않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들이 많은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병든 사람들이 의사로부터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말란 것, 먹지말란 것을 숨어서라도 하고 기여히 먹는 것을 보면 익숙한 것들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털어버려야 할 것들은 과감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게 되는 것이며 나와 연결되어진 모든 것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 가운데는 익숙하기 때문에 옳지 않지만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온갖 구습과 관습과 관행들이 그것이며 도그마된 허울 좋은 주의와 주장들과 학설들이 그것들이다. 기독교 안에는 이런 것들이 없는가? 교회와 내 인생과 내 신앙생활 가운데는 이런 것들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익숙한 것이어서 쉽고 버리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자신을 죽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익숙치 아니해서 두려움이 있고 어려울지라도 아직 가보지 않는 새 길을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익숙한 것이 주지 못한 흥미와 흥분과 열정을 일으켜주고 삶의 맛과 신앙의 맛을 새롭게 느끼도록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하지만 이제 버리고 떠나야할 이러한 구 세대적이고 비복음적이며 죄악된 배에 더 이상 머뭇거리기를 계속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승선할 이유가 없으며 과감하게 하선하여 새 배로 바꾸어 타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우리 한번 그렇게 해보자. 결과에 더무 신경쓰거나 집착하지 말고..............
곡예사가 그네 타기 곡예를 할 때 잡고 있는 그넷줄을 놓지 않으면 다른 그네를 잡을 수가 없다. 과감히 잡고 있는 줄을 놓아버려야 다른 줄을 잡아서 묘기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익숙한 것들로부터 이별을 고하는 이별식을 해보면 어떨까. 익숙한 것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를 있게 한 공로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한다면 익숙한 것들이 장애물이 되고 방해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아니면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면 배설물처럼 버리지 아니하면 안 된다.
고장 난 비행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비행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조종석이 죽음의 함정으로 변했을 때에도 익숙지 않는 낙하산보다는 손에 익숙한 조종석을 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싶은데 우리 생활가운데서도 놓아버리면 살 수 있는데 놓지 않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들이 많은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병든 사람들이 의사로부터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말란 것, 먹지말란 것을 숨어서라도 하고 기여히 먹는 것을 보면 익숙한 것들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털어버려야 할 것들은 과감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게 되는 것이며 나와 연결되어진 모든 것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 가운데는 익숙하기 때문에 옳지 않지만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온갖 구습과 관습과 관행들이 그것이며 도그마된 허울 좋은 주의와 주장들과 학설들이 그것들이다. 기독교 안에는 이런 것들이 없는가? 교회와 내 인생과 내 신앙생활 가운데는 이런 것들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익숙한 것이어서 쉽고 버리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자신을 죽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익숙치 아니해서 두려움이 있고 어려울지라도 아직 가보지 않는 새 길을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익숙한 것이 주지 못한 흥미와 흥분과 열정을 일으켜주고 삶의 맛과 신앙의 맛을 새롭게 느끼도록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하지만 이제 버리고 떠나야할 이러한 구 세대적이고 비복음적이며 죄악된 배에 더 이상 머뭇거리기를 계속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승선할 이유가 없으며 과감하게 하선하여 새 배로 바꾸어 타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우리 한번 그렇게 해보자. 결과에 더무 신경쓰거나 집착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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