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전승이 약한 민족 본문

살림운동

전승이 약한 민족

유앙겔리온 2003. 6. 18. 15:32


6.15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 3주년이 되었다. 우린 그 때 참으로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이렇다할 남북관계의 진전이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때의 감격이 어쩌면 1회적인 행사성 감격이 아니었나 싶을 지경이다. 워낙 지금까지 남북의 문제를 민족차원이 아니라 정권차원에서 접근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이번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3년 전 그 때, 온 국민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의중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민족은 전승에 약하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고 자기 정권이 한 일이 아니면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라도 그것을 폄하하고 그릇 평가하여 가치를 떨어드린데 익숙하다. 과거의 것을 계승하여 더 나은 것으로의 진보보다는 과거를 부정하고 깨뜨려 버리고 다시 백지상태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다시 겪으면서 무엇을 남기려고 한다. 그러다가 정작 결과물은 과거보다도 못한 작품을 만들어놓을 때가 많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전승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과 집단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작은 공통점만 있어도, 작은 가치만 있어도 그것을 긍정하여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전승력(傳承力)을 길러야 민족이 살고 문화가 산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공동선언은 지금껏 어떤 정권도 일궈내지 못한 남북관계와 세계평화에서 대단히 발전적인 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새로 바뀐 정권은 애써 그것을 모른 채할 뿐 아니라 도리어 부정하고 범죄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계승해야할 정권도 이렇다할 기념식하나 없이 보내고 야당은 자기들이 한 일이 아니니 절대로 좋게 평가할 수 없다는 식이다. 자기들이 한 것이면 그른 것도 옳고 남들이 한 것이면 옳은 것도 그르다고 우격다짐을 하는 식이다.

어차피 현대인들이 과거사를 판단할 때 현재의 시각과 잣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 시각과 잣대가 대단히 객관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을 남긴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과거사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판단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관이나 시대상황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판단이 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과거사를 말할 때는 언제나 공정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그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사를 판단할 때는 민족적 전승을 담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전승이 약한 민족은 부흥하지 못하며 지배적 위치에 놓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축적된 민족의 힘이기 때문이다.


'살림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  (0) 2003.07.02
잊어서는 안 될 기억  (0) 2003.06.25
마땅히 할 일  (0) 2003.06.11
학습된 무능력  (0) 2003.05.22
정보전염병(인포데믹 ; infordemic)  (0) 200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