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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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꿀을 따오는 벌들로 우글거리는 벌집처럼

유앙겔리온 2002. 10. 24. 11:43


예전에는 작은 들풀에 이름 없는 꽃만 피어 있어도 꿀을 따러오는 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조경이 잘 된 정원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어도 많은 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어쩌다 한두 마리 날아오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웅웅거리는 별들의 날갯짓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상황이 이와 같다면 표현이 잘못된 것일까? 한국교회가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는 많이 늘어나지만 오히려 교인들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벌통은 늘어나는데 벌들은 줄어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전도한다고 하지만 교인들의 수평이동만을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것 때문에 교회끼리 생존경쟁을 하고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온갖 편법까지 동원하여 교인 숫자 올리기에 급급한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엔 형제의식이나 동역의식이나 이웃의식도 없고, 도덕도 윤리도 사라진지 벌써 오래다.

여기서 이 방법이 성공했네 하면 앞 다투어서 그 방법을 도입하고 모방하기 바쁘다. 그리고 또 저기다 그러면 그것으로 밀려든다. 자기 몸에 맞지도 않은 옷을 입는 것과도 같이 꼴불견이지만 상관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니 순수이 자기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수년 동안 공부한 신학은 단지 목사의 인허를 받기 위한 것 일뿐 이후에는 신학은 철저히 무시된다. 신학은 없고 방법만 무성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떤 경우라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세울 수 있는 신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방법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덕이 있어야 하겠다. 개인적인 신앙체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굉장한데 접촉을 해보고 거래를 해보면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 고집스러움뿐이며 자기 자랑뿐이며 타인에게 상처만 주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이 악순환이 되어 한국교회의 선교환경을 악화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선교환경을 살려야 교회가 사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밀원을 살려야 꿀벌이 살며 풍성한 꿀을 얻게 되는 것과 같다. 꿀벌이 분주히 꿀을 쌓기 위하여 벌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활기찬 한국교회이기를 소망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는가?

지나치게 왜곡된 값싼 은혜론과 구원론이 변화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했고 공동체적인 신앙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인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 한 마을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나만의 일이 결코 나만의 일일 수 없고 너만의 일이 결코 너만의 일일 수 없이 되었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의식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의 위기를 당하게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교환경을 힘쓰고 애써서 아름답게 가꾸어야 꿀벌이 분주하게 꿀을 따서 벌집을 드나드는 것과 같은 한국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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