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4) 본문

인간의 질문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4)

유앙겔리온 2022. 1. 20. 18:39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 56:1~4

시56: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시56: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시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오늘 본문의 배경을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사울 왕을 피하여 전국방방 곡곡으로 도망다니다가 도저히 이스라엘 땅에서는 머물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끝내는 적국인 브레셋 땅으로까지 도망을 가게 됩니다. 다윗은 이를 통해서 도망자의 서러움과 도망자의 두려움을 원없이 경험했습니다. 

  다윗이 도망간 그곳 블레셋 땅 가드의 왕은 아기스였습니다. 그런데 삼하 21장에 보면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전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때 그가 골리앗 장군을 죽였고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아기스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를 죽이게 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듣자 아기스왕이 자기를 죽이리라 생각에 두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친 체 하여 대문짝을 긁고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도망 자의 두려움과 잡힌 자의 두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생이 이런 처참하고 두려운 날에 무엇을 의지해야 할 것인가를 깊은 고민을 통해서 찾아낸 것을 고백으로 담고 있는 시편이 오늘 본문의 시편입니다. 그가 두려운 날에 느꼈을 고민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처참하고 두려운 날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오늘 시편 56편에는 이 질문이 두 번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얼마나 수 없이 던진 질문이었겠습니까?

  그는 지금 혈육을 가진 사람인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치고 있고, 혈육 있는 사람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이러면서 사람의 무서움을 철저하게 경험했습니다. 

  1~2을 보세요, "사람이 나를 치며 종일 압제 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압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삼키려 하고 교만히 치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 많습니다. 지속적이고 많은 수효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번 겪는 일도 힘든데 말입니다. 한 두 사람이 괴롭히는 것도 힘에 겨운데, 다윗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많은 이들에 둘려 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겠습니까? 그 큰 고통과 공포심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입달린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합니다. 사람 참 무섭습니다. 인심이 참 야박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상대방쯤은 어떻게 되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겁먹고 사람을 의지해버리는 것이 대세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돌아가버리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아닌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에게 마음을 주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보다도 혈육 있는 사람을 더 무서워해서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사화복을 혈육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맡겨두시고 모른체 하실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혈육을 가진 사람을 내가 무서워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사람이겠습니까? 하고 질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두려워하는 날에 의지해야 할 대상은 혈육을 가진 사람입니까? 혈육이 아닌 영이신 하나님이십니까? 다윗은 하나님으로 부터 확실한 답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다윗은 고난이 올 때, 마음이 약해질 수는 있지만 결코 혈육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람에게 돌아가거나 사람을 의지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경험이고 간증입니다. 

  혈육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의지할 바가 못되며,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것이 최선이고 복된 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진 일들이 다윗의 목을 조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다윗의 마음을 꺾어놓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에는 구조와 성질이 바뀌는 데는 임계점이란게 있습니다. 일테면 물이 끓어 기체가 되려면, 물이 얼어 고체가 되려면 반드시 임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임계점을 넘지 않을 때 아무리 가까이 갈지라도 구조와 성질이 바뀌지 않습니다. 

  혈육이 무엇입니까? '바싸르', '살, 고기'란 말입니다. 살덩이인 인생이란 말입니다. 살덩이인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고 승리하리라 여기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살덩이리인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지신 것 같은 일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습니다. 살덩어리인 사람은 미처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와 일하심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잠 29:25절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했습니다. 사람의 공포에 시달리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도 사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공포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공포를 이길 때 하나님께서는 혈육 있는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높고 안전한 곳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10:28~31절 말씀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그런 두려운 날에, 그런 두려운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두려울 때 그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만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두려운 날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두려운 날과 그 상황 가운데서도 찬양이 흘러 나오게 되었고 감사가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혈육을 가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다윗처럼 많은 문제와 위기에 직면합니다. 돌파할 것이냐 꺽이고 말 것이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언제 인생이 꺾이게 되는 것입니까? 혈육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할 때입니다. 사람의 공포에 빠질 때입니다. 혈육 있는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습니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두려운 날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혈육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의지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