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18) 본문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 139:17~18
시139: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139: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교토삼굴'이란 한자어가 있는데 '지혜로운 토끼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적어도 세 개의 굴을 파놓고 산다'는 뜻입니다. 토끼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이렇다할 강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토끼가 정글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녹녹하지 않는 일입니다.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토끼는 자신이 살아가는 주변에 토끼굴을 세 개 이상 뚫어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토끼는 생존을 하고, 평안한 잠을 자며, 종족을 보존하고 종족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토끼만 못한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 모든 분야에는 고수가 있는가 하면 또한 하수가 있습니다. 고수는 수가 높아서 여러운 것도 쉽게 해결하고 하수는 수가 낮아서 쉬운 일도 어렵게 합니다. 고수는 수를 쓸수록 이롭게 하고 하수는 수를 쓸수록 악수를 써서 해롭게 합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은 인생고수여야 하고 그보다 더욱 가까이 해야 할 분은 '생각이 보배롭고 그 수가 해아릴 수 없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하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그 수에 감탄하며 반문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아주 친근한 말투로 확인하여 되묻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살면서 주의 생각이 보배로운 것과 그 수가 높고 많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생각' 즉 '레아'라는 말은 "양육하다, 기르다, 사귀다, 양을 치다" 등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양육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귀는 것도 양을 치는 것도 다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보배롭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소중하고 희귀하고 값지고 무거운 것'입니다. 가볍고 별 볼일 없는 그런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그 생각을 따르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은 악한 생각이요 사망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수'는 히브리어로 "로쉬"입니다. "머리, 봉우리, 꼭대기, 상품, 수석, 으뜸"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로쉬는 헤아리기 위한 수(數)도 아니고, 방법과 방책을 말하는 수(手)도 아닙니다. "머리, 봉우리, 꼭대기, 상품, 수석, 으뜸" 등을 말하는 최고의 것을 일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수는 최고의 것들인데 거기다가 그 종류와 횟수, 즉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다 셀 수도 없고, 말로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수를 믿고 범사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수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수도 없이 만났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갈등하기도 합니다. 한발자욱만 더 나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지경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인생 살아가면서 다 이해되어서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더 많은 순간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길까?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자녀들의 인생 길이 꼬일 때,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안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일들은 계속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생각은 보배롭고 하나님의 수는 해아릴 수 없을 만큼 높고 많음을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닥친 수 많은 문제들과 위기들을 잘 넘길 수 있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내가 의심하고 흔들릴 때도 하나님의 나를 향한 생각이 보배로우시며, 나를 향한 수가 많음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기자는 "나도 하나님처럼 보배로운 생각을 해야지, 나도 하나님의 수처럼 고수가 되어야지" 수 없이 다짐하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오늘 본문말씀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이 표현이야 말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함축적이고 집약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의 수보다도 하나님의 수가 낮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인줄 모르고 사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를 대적으로 삼았던 악인들이 그러했으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이들이 바로 그러한 이들입니다. 그런가하면 오늘을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수를 고집하지 않는 겸손함입니다. 하나님의 그 보배로운 생각에 어찌 내 생각이 미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그 높고 많은 수에 내 수가 어찌 통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17-18a) 묻고 또 묻고 인정하고 또 인정하며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생각과 하나님의 그 높고 많은 수를 알아 볼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간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보배로운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보배로운 생각을 이루기 위해서 가지신 수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아서 다 셀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해보고 잃은 것 같아서 낙심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오히려 넘치게 하시고 우리를 손해보게 하시고 잃게한 이들을 민망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망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서 살아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배로운 생각을 믿고 하나님의 수가 많음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수를 넘을 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비하면 하찮고 우리의 수는 하나님의 수에 비하면 하수 임을 인정할 때 그렇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은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18b)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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