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구오니이까?(시 15:1~5) 본문

인간의 질문

누구오니이까?(시 15:1~5)

유앙겔리온 2022. 1. 12. 13:55

누구오니이까?
시 15:1~5

시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시15: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시15: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요즈음 백신 패스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이 제도의 확대를 놓고 논란이 많은 것같습니다. 백신 패스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음성으로 확인된 사람에게 발급하는 증명서로, 특히 다중이용시설을 출입할 때 제시하여 미접종자의 출입을 제한하도록 한 제도를 말합니다. 

  사람의 출입을 허가하거나 제한하기 위해서 자격을 묻는 제도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러 곳에서 여러 형태로 이루졌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핑크스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한 그리스도 신화 속의 괴물인데 그 앞을 무사히 지나가려면 스핑크스가 내는 문재를 풀어야 했습니다. 풀지 못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값은 죽음이었습니다. 그 수수께기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침엔 네 발로, 정심엔 두 발로, 저녁은 세발로 다니는 동물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이전에는 이 문제를 푼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최초의 인간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디지털세상에는 어느 곳을 출입 하려고 하던지 본인 인증은 반드시 해야 할 필수요건입니다. 그리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패스제도를 통과하지 않으면 디지털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아무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드신 분들도 디지털 문맹인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디지털 능력을 키워야 하고 그 활용성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들어가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올라가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하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성서시대에 주의 집으로, 주의 성산으로 예배를 드리려 나오는 모든 예배자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나오는 자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에서 이 질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장막에서 하나님의 성산에 거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정말로 주의 장막에 머물기를 소원했고,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다윗이 던진 이 질문과 대답은 성서시대에 영적 패스제도인 샘이지요. 뿐만아니라 이는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아가야 할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영적 패스의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와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되는 특권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이 질문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이 장막과 이 성산을 차지할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이들이 이 장막과 이 성산을 자기들 것인양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를 특정해 주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십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서시대에 주의 장막과 성산에 들어가 예배하고 그곳에 머물고자 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11가지 덕목으로 체크를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예.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그렇다면 통과해도 좋다 라고 "패스" 허락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오늘은 11가지 덕목을 하나 하나 풀어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지킨 자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패스 허락을 받고 들어가서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가 산 제사가 되고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들어가 드리는 제사나 예배는 제사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결멸하는 제사와 예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주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그곳에 들어가고자 할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너는 그런 사람더냐?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지붕 아래 거닐며 그 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인가? 누가 그 거룩한 성산에 올라가 그 분의 신부로 그와 함께 살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주 앞에 나설 때마다 정말 심각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할 질문입니다. 

  교회의 참된 존재 목적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안에서 살면서 영적 패스에 거부당하지 않고 무난히 통과할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과뿐아니라 그 분과 가장 친밀함을 나타내고 있는 그의 장막과 그의 성산에서 그 분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한 일들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 믿음의 권속들은 종국적으로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주의 장막이 되고 주의 성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신 이유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주의 장막이 되고, 주의 성산의 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이 그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환난이 그를 압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지막 부분에서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셨습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권고해서 하나님의 장막과 성산에서 거절맞지 않아야 하겠고 그곳에 들어가서도 결코 요동치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서로를 도와야 하고 짐을 서로 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의 목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성도의 교제를 힘들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100%로 완벽하게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강력히 주장하신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생명이 모든 도덕과 윤리, 더 나아가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1가지 덕목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우리가 그 분 앞으로 나아갈 때에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나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과 발, 창에 찔리셨던 몸을 보이시며 우리를 주의 장막에 인도하시고 머무를 자가 되게 하시며, 우리를 주의 성산으로 끌어올리셔서 그곳에 사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금년 새해에는 주를 더욱 잘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