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아니니이까?(대상 21:16~19) 본문

인간의 질문

내가 아니니이까?(대상 21:16~19)

유앙겔리온 2021. 12. 16. 17:57

내가 아니니이까?
대상 21:16~19

대상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대상21: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대상21: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대상21: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다윗 왕의 말기 때에 심령 상태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구조사의 욕망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 사탄이 준 마음이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불일듯 일어나는 욕망으로 군대장관 요압에게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왕의 인구조사 지시에 대해서, 평상시의 다윗같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라고 조언하면서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절대왕권을 가진 왕에게 신하가 이렇게 조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압이 잠깐이지만 그가 보여준 것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같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에도 요압같은 이가 있어서 왕이 하려고 하는 죄악된 일을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었구나. 다윗이 이 때 요압의 조언을 경청하고 받아들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요압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를 철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윗은 엄한 명령으로 "요압을 재촉한지라"(4절)했습니다. 묵인하지 않고 방조하지 않고 철회할 것을 요구한 요압에게 떨어진 것은 위협하는 왕의 재촉이었습니다. 요압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왕권시대의 한계였고, 요압의 한계였습니다.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는 그 마음 중심에 통치하시는 여호와를 멀리하고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과시함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그 안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내가 싸워서 땅을 넓히고 백성을 얻었다는 자기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한 다윗에게 진노하셨고 진노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견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셔서 그에게 어떤 재앙으로 보응 받을 것인지 세 가지 안을 주어 택하게 하셨습니다. 1) 3년 기근이 임하든지, 2) 3달 동안 적군에게 져서 쫒겨 다닐 것인지, 3) 3일 동안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할 것인지를 택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세 가지 안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이 사흘 동안 유행하는 징벌"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다윗은 이 문제를 놓고 대응에 나섭니다. 그런데 다윗의 대응은 남다른 모습이었음을 오늘 본문말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잠깐의 실수로 너무나 큰 댓가를 치른 다윗은 비로소 자신이 인구조사를 한 것을 크게 자책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21:8). 했습니다. 큰 죄를 범하고 미련하게 행하였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지어는 자신 충복인 요압 앞에서 까지 미련하게 행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선 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펴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서 7만명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지 않고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선 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어느때 보다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까? 다윗은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의 원인을 자신의 악으로 돌리고, 그 죄 값을 백성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겨 자신과 자신의 아비집이 당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나마 자신의 처음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막둥이고, 작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져도 좋은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주저함으로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배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염치고 체면이고 간에 그는 깨닫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자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것은 다윗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이제라도 말씀하시면 순종하고 복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아비집이 당하게 해달라는 것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겸비와 복종과 희생을 보인 다윗을 보고 그 마음에 합하게 여기셨고,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거두신 것입니다. 

  다윗의 실수가 어디 다윗만 하는 실수일까요? 이런 다윗의 교만이 다윗 안에만 있을까요? 내 안에는 과연 없다고 당담할 수 있을까요? 다윗보다 어쩌면 우리는 백배 천배 만배는 더 실수하고 더 교만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교만함의 죄, 교회의 죄로 인해서 오늘 우리가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 코로나와 같은 전명병이 발생하고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윗처럼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 앞에 굵은 베옷을 입고 바짝 엎드려 회개하며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제단을 쌓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