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대상 29:14~19) 본문

인간의 질문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대상 29:14~19)

유앙겔리온 2021. 12. 21. 12:04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대상 29:14~19

대상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29: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대상29: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대상29: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대상29: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하나님께 아뢰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여지없이, 아주 일거에 거절하셨습니다. 거절하신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가 평화의 사람이 아니라 "전쟁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는 했으나 피를 많이 흘린 전쟁의 사람이 지은 성전이 아닌 평화의 사람이 지은 성전에 임재하시고 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허락하시지 않는 그 위대한 일을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는 구하지도 않았지만 허락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 아들 솔로몬에게는 허락된 성전건축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들이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저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지을 예물을 마음껏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들도 다 즐거이 드리고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을 놓고 다윗은 감격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 기도 내용 중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하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것을 드리고서도 어떻게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 자신도 감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자신의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소유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확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소유를 늘려가려고 합니다. 소유가 많아질수록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소유에 집착할수록 소유의 노예가 됩니다. 자신이 소유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즐겁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자신의 것을 드리고 희생하는 일과 같은 것은 즐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즐겁지 않는 일을 즐겁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즐겁지 않는 일을 참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리 즐겁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너무나도 즐겁게 했습니다. 다윗의 남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즐겁지 않는 일을 즐겁게 해내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도 그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그물에 걸린 새처럼 되었을 때에도 여러번 그를 살려주고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삽비라의 일로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받았을 때에도 즐거이 그것을 수용합니다. 지난주에 살핀 인구조사로 인하여 그가 환난을 겪을 때에도 즐거이 환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내가 크게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마시고 범죄한 자는 내가 아니오니까? 그러니 나와 내  집을 치시옵소서"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다윗이 즐거이, 기꺼이 했습니다. 

  여기 '즐겁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기분이 좋고 신이난다"는 뜻입니다. 유의어는 '흐뭇하다. 유쾌하다.'이고, 반대말은 '슬프다. 언짢다. 괴롭다.'입니다. 그러니까 기분좋고 신이나게 흐뭇하고 유쾌하게 했다는 것은 즐겁게 했다는 것이고, 슬프고 언짢고 괴롭게 했다는 것은 즐겁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 한번 살고 가는 것인데 신이나고 흐뭇하고 유쾌한 삶을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과연 그렇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슬프고 언잖고 괴롭게 사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원하는 것은 즐거운 삶일텐데 왜 원치 않게 슬프고 언짢고 괴롭게 사는 것입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다윗의 기도를 통해서 그 답을 얻게 됩니다. 다윗은 타인들이 슬프고 언짢고 괴롭게 할 일을 흐뭇하고 유쾌하게 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왔습니까?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성서시대 당시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로운 자였고, 이스라엘은 가장 영예로운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 본문15절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자였고 선하고 유익한 자였으며, 오래 살았고 사는 동안 선한 뜻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이요, 어두운 것이며, 인생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자신이 비천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쭐거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항상 꺼지지 않는 겸손의 등불이 있었습니다. 작은자임과 보잘 것 없는 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 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청중의 절반 정도는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이 제시한 다섯 가지 조건은 전부 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약간 모자란 듯한 삶,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에 넘치는 부와 소유욕, 분수에 넘치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모릅니다. 오히려 불행해합니다.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부족하게 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넉넉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보다 100배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 14절과 16절에 보면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절)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16절)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드리는 모든 것 지금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의 출저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인생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힘을 잃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집하기 때문에 슬프고 언짢고 괴로운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인생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면 내 가진 못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돌리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을 얻어 살게 될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