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민 11:10~15) 본문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민 11:10~15
민11: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민11: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민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11: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민11: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민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본문은 '질문들의 모음집'이라 할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세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터져나오는 질문들을 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모세가 이렇게 질문을 쏟아내게 된 이유는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4절).하는 말씀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어서 내지르는 원망의 소리에 쉽게 동화되고 그 영향력 아래 또다시 놓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처럼 매일 먹는 만나에 질렸고 이제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을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등장하고 있는 '섞여 있는 다른 인종들'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빠져나온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섞여 있는 다른 인종'이란 표현이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할례를 받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 본진에 소속되지 못하고, 아마 각자 연관을 맺고 있는 지파에 붙어 '식객'노릇을 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대대로 전해져 오는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을 향한 소망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광야 여행 중 어려운 고비 때마다 제일 먼저 불평 불만을 터뜨렸던 진원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의 불평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흔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마저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불평의 파괴적 전염력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들에게 전념되고 이들의 영향력에 끌려다녔다는 것이 좀 부끄러운 모습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가운데 섞여 있는 다른 인종이라고 해보았자 이스라엘 민족에 비하면 소수였을 터인데 그들을 만류하거나 달래거나 가르치지 못하고서는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에 끌려가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올바른 생각을 하는 다수라고 해도 잘못된 생각을 지닌 소수에게 영향을 받게 되어 자칫 잘못된 생각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좋은 말 열 마디보다 나쁜 말 한마디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실제로 사람은 하루에 하는 생각 중 70~80%가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소수에 그치지 않는 세상 가운데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믿음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더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악한 일과 생각을 멀리해서 단단하게 선한 에너지를 다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섞여 있는 다른 인종의 불평과 애굽에 대한 회귀적인 인습의 전염력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은 모세도 넘어뜨렸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기쁨을 잃었습니다. 10절에 "이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라고 했습니다. 지금가지 힘겨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한두번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직면했습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힘주셔서 잘 버텨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기타령에는 지치고 말았습니다. 기쁨을 잃었습니다.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는 이들을 홀로 감당하기 힘들고,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내게 그럴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백성들은 다 하나님 백성인데 왜 나에게만 맡겨 두시고서는 나를 이 고생을 시킵니까? 차라리 이쯤에서 나를 죽여주는 것이 내게는 은혜입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탈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사납고 추한 꼴은 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모세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탈진한 모세의 이런 질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응답해주셨습니다. 홀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 모세를 위하여서는 민 11:16~1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응답해주셨습니다.
혼자 하지 말고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책임을 70인에게 분산시켜주셨습니다.
혼자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탈진합니다. 그리고 탈진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 오늘 우리 중에 모세처럼 너무나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탈진 상태에 빠져 있지는 이는 없습니까? 지혜로운 분담이 필요합니다. 함께 지면 짐이 훨씬 가볍습니다. 또한 시너지가 생겨 혼자 할 때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힘들고 탈진이 될 수록 함께 할 자를 찾아야 합니다. 반듯이 함께 할 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열왕기시대에 아합과 이세벨에게 쫓김을 당하던 중에 엘리야가 탈진해서 하나님께 '나를 죽여주시옵소서 나 혼자 밖에 없나이다.' 했을 때, 기억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너를 도와 함께할 7천명의 사람들이 예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백성에게 고기를 구하여 주는 것을 걱정하고 염려하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너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내 능력으로 그들에게 고기 냄세가 역겨워서 냄세조차도 싫어하기 까지 그렇게 먹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1:18~20절에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했습니다.
그러나 탈진한 모세에게 있어서는 이 또한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하나 더할뿐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동안 이들에게 고기를 먹이시려면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겠나이까?" 모세는 인간적인 논리와 수학적 계산을 다 동원해서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답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말을 하셔서야지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때 그 유명한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게 되리라"(23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더니, 사방에서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지면에 덮이는데, 하룻길 되는 지면에 두 규빗 쯤 쌓여서, 백성들이 잡아다 영양 많은 메추라기 고기를 실컷 먹었습니다.(31절)
그러므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이미 예비해 놓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손은 모세 때만 짧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여호와의 손은 결코 짧지 않는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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