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민 16:20~24) 본문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 16:20~24
민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민16:22 그 두 사람이 엎드려 이르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16: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16:24 회중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은 계속된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그것도 출애굽을 부정하려드는 어긋장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하나님을 무시한 행위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러한 행위를 징계하시기로 결정하시고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21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문제를 일으켰던 고라당과 그 회중들을 버리고 속히 그들에게서 떠나도록 했습니다. 이 때 모세와 아론은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구나 하면서 회중을 속히 떠나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런 하나님의 결심 앞에서 자신들의 무릎을 끓고 엎드렸습니다. 22절 앞부분에 "그 두 사람이 엎드려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특히 모세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지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교회 지도자들과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배우고 익히고 지니고 갖추어야 할 것들을 제시해주는 좋은 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를 배우고 모세의 리더쉽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엎드린 것은 자신들을 위한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위해서 충성하고 순종하며 존중했던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극심한 어려움을 주어서 그들을 향하여 심히 노했던 당사자들인 고라당의 무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멸하려 하시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신의 공동체를 사랑하고 그들의 죄를 위하여 중보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우리가 속한 이 교회의 모든 이들은 모세와 아론처럼 한광의 공동체를 사랑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을 때에도 사랑하게 하옵소서. 자신을 노하게 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엎드려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일어 나서" 불평하고 원망하나 모세를 거스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일어서서 말하기 전에 엎드려 기도하고,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림은 나를 넘어뜨리려는 공격에 대한 최선의 방어입니다. 엎드린 자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엎드린 자의 편이 되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엎드렸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하나님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질문한 것은 그 원리를 몰라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라나 나단이나 아비람과 그 무리들이 한 일은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 많은 사람들이 타고가는 배를 타고 가면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타고 가는 배자리 바로 밑을 송곳으로 뚫어 작은 구멍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 승객들이 그에게 “자금 뭐하는 겁니까?”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로부터 동료 승객에게 돌아온 대답이 참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내가 내 자리 밑을 뚫고 있는데, 그것이 당신들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에 승객들은 “당신 한 사람이 뚫는 곳으로 물이 들어오면 우리 모두 배와 함께 침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어린 아이일지라도 아는 일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질문을 모세가 엎드려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핵심 주동자는 고라 외에 다단과 아비람과 250명이 있고, 그들에게 동조한 많은 무리들이 있었지만 모세와 아론은 이 모든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의 죄를 최대한 축소시키고 하나님의 심판을 최소화 하려는 마음에서 였을 것입니다. 모세는 반역하는 무리 전체가 죽는 것을 막으려고 한 사람의 범죄라고 인원을 축소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본심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 것이 한을 푸는 일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확대하고 전쟁을 확산시키고 불행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세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과 복음적인 교회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는 축소시키고자 하지만 남의 죄에 대해서는 부풀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분이나고 화가 미친다고 괘씸하고 섭섭하고 밉다고 죄를 부풀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에게 반역을 했던 이들의 죄를 축소하려고 했고, 한 사람이라도 덜 징계받도록하기 위해서 "죄 지은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죄를 가지고 온 회중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애원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엎드려 드리는 이 기도는 창 18장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으로 중보하며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닮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특히 모세의 중보기도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나님을 부르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의 죄악을 인해서 온 회중에게 진노를 내리십니까? 그리하지 마옵소서"하고 간구하고 요청할 수 있었던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많은 생명을 해하시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하셔서는 안될 일이라는 모세의 하나님 설득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건방진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그것이 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반역하는 모든 회중을 죽이려던 계획을 바꾸시고 저주의 범위를 핵심인물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으로 축소시키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여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온 회중에게 진노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네가 옳다." 하시고 대답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그런 자리에 설 수도 있을텐데 모세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위해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모욕적인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쌓아둔 분노를 폭발해서 "싹쓸어버려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입니다. 용서하지 마옵소서" 와 같은 부풀려진 고소와 고발을 하나님께 하지 않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저주의 범위를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긍휼을 입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필요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할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미치지 않도록, 미치더라도 소수에 그치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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