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 17:15~19) 본문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창 17:15~19
창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최근 해외의 과학자들이 '가장 행복한 나이는 몇 살?'인가라는 주제로 조사한 결과, '74세'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1세부터 40세 까지는 행복지수가 꾸준히 하락하다가, 46세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74세에 정점을 기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사회지표조사저널( journal Social Indicators Research) 최신호에 실렸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들은 어느 나이가 참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제가 가장 행복할 때였습니까?
세계적인 심리치료사인 메리 파이퍼 (Mary Pipher)가 쓴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생이 세월의 강을 우아하고 지혜롭게 항해하는 법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저자의 나이 70세가 넘어서 쓴 책입니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책 제목이 괜찮다 여겨졌습니다. 어느 순간이든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는 순간이면, 거침없이 "내 나이가 참 좋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언제든지 "나는 지금 내 나이가 참 좋다"할 수 있는 자가 되면 그 인생은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살다보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참 좋은 인생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마음속에서 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 17:17절)라고 읖조렸던 이 말씀을 제목 삼아서 은혜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나이를 참, 마음에 안들어 하며 사는 인생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75세의 나이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 나이입니까?했던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좀더 젊은 날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어떻든 투털거리며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4년이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왜 찾아오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금, 그의 나이 99세에 이르러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완전하라"하시면서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셨을 때에 그는 더욱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75세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이후로 몇번의 중간 점검을 통하여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믿음이 생겼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현실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그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을 때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속히 이행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짧은 시간이어지만 아브람에게는 천년세월이 흐르는 듯이 나이 먹어감이 초조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더욱 초조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는데, 대리모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보자는 생각입니다. 사라에게는 이집트 여인 하갈이라는 젊은 몸종이 있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자 아브라함은 못 이기는 척, 그 제안을 수락하였고, 하갈이 아브람의 첩이 된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년후였습니다. 그리고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세였습니다(16:6).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 동안 그의 믿음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개명해주시고 다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시되 내년 이 시기에 아들을 주시리라 하시면서 이삭이라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육체의 변화를 깊이 그 몸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몸으로는 14년 전에도 안되는 것을 알았기에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는 편법을 활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한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얻은 아들이 아니어서 하나님의 마음에는 안드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 아들이 아닙니까? 하면서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잘 살기를 원하나이다"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이제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차별받기에 딱좋은 나이였습니다. 성경도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18:11)했습니다. 그냥 늙은 정도가 아니고,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다고 선언합니다. 아이를 갖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나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배꼽을 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이 나이에 무슨 자식을 볼 낙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그만 좀 놀리세요.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나이는 어떤 나이든지 차별받아야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불가능한 나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네 인생의 나이는 '참 좋은 나이'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지금 "내 나이가 참 좋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는 지금 내 나이가 참 좋은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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