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 15:6~11) 본문

인간의 질문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 15:6~11)

유앙겔리온 2021. 8. 14. 13:17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6~11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창15: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창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 15장에는 아브람이 하나님께 드린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가 아브람 자신의 생각에는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이러다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흐지부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생긴 질문이었습니다. 이 것은 꼭 집고 넘어가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첫번째 질문은 주시겠다는 자식과 관계된 질문인데,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는 질문을 통해서 아브람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었을 때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후손에 대한 언약의 성취를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지난 주일에 살펴본바입니다. 

  아브람은 자손의 언약 문제에서는 이제 겨우 의심의 사람에서 확신의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질문인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하는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상속자가 없음을 인하여 한탄하는 아브람을 겨우 달래셔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게 만드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자손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땅의 문제도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고 해서 모든 의문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땅에 대한 언약과 성취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친김에 다시 아브람을 설득하십니다. 7절입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람아 기왕지사 믿을 바에는 이것도 믿으렴. 그러자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 말씀 앞에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하고 대뜸 질문을 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질문은 말씀만 말고, 그 말씀이 확실하다는 증표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람은 이곳이 내 땅이라고 주장할만한 단 한평의 땅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대한 말씀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납득이 될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믿어지도록 이 땅이 내 땅이 되리라는 "증표를 주십시오."하고 요구한 것입니다. 또한 제가 하나님이 주실 땅에 대해서 믿을지라도 상상으로서만이 아닌 실재하는 실마리가 되는 증표가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한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러한 요구가 어쩌면 대인배답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9,10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고, 17절에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절)했습니다. 

  아브람 당시에 고대근동 국가에서 이러한 언약방식은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하고 난 후 보증을 위해 시행했던 보편화된 관습이었습니다. 계약 규모에 따라 동물을 잡았습니다. 동물을 정확하게 반으로 잘라서 양쪽으로 벌려놓습니다. 그리고 쌍방 당사자가 나란히 쪼갠 동물 사이를 통과함으로써 언약식이 성사됩니다. 쌍방 당사자가 쪼갠 동물 사이를 지나는 것은, ‘만일 계약을 어기면 쪼갠 고기 신세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주 살떨리는 끔찍한 계약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보증을 주시되, 그에게 친숙한 언약 체결 방식을 통해 그와 친히 언약을 체결하시고 보증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본래 언약식에서는 언약의 당사자들이 함께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것은 “타는 횃불”뿐 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시고 아브람은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언약을 체결할 때는,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함께 쪼갠 짐승 사일 지나가야하는데 하나님꼐서 아브람과 맺은 이 언약식에서는 아브람은 구경만 하고 하나님만 고기 사이로 지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람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의 생명과 명예와 하나님 되심을 걸고 이루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존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소인배스러운 아브람을 상대하셔서 언약을 체결해주신 것입니다.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고 이를 보증해주심으로써 땅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요청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18절에서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했을 때 더는 질문하거나 머리를 도리도리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수락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성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약함 속에서, 여러 긴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확증되어가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너무 조급해야지 마세요. 조급한 마음에 일을 망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의심할 때, 우리 믿음이 연약해져서 뻔뻔스럽게 증표를 요구할 때 우리를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그 요구를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체결을 준비하시게 하시고, 생생하게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방식으로 증표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시고 보증하시되 우리의 수준에 맞추십니다. 즉 우리의 부르심을 확증하시고 보증하시되 우리가 친숙해하는 방식과 상황을 통해 그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확증을 요구하되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시는지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언약이 이루진 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우리의 눈에 그렇게 보일뿐이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이 나를 낙심하게 하고 내 마음을 지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게 내 삶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성취해 가시는 분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