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스가랴 4:10) 본문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스가랴 4:10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스룹바벨 성전 공사가 처음 시작할때부터 초라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방해꺼리로 인해서 오랫 동안 멈추었다가 다행히 다시 시작되어 일이 친적되어가고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데 이런 진척에도 불구하고 과거 솔로몬 성전의 영광과 웅장함을 본 자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중심이 되어 지금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진행되는 성전 공사를 보면서 허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규모도 가진 것도, 기술자도, 함께 참여하는 자들도, 멸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것에 불과하게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지어질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 아시지요? 아버지 다윗이 이미 넘치도록 준비했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를 이어서 더 준비해서 지은 성전입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가운데서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헌신을 자제시켜야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룹바벨성전은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 건축이 시작되었고, 외히려 방해꺼리만 많은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 스룹바벨성전이 지어져가는 것을 보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마음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전 솔로몬 성전이 아무리 크고 웅장하다고 하여도, 그 성전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건물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헛된 것이요,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엄숙함과 경건함은 종교적인 예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가봇의 성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기에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의해서 무너졌고,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그 뜨거운 불시련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전의 외부 모양만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을 작은 일로 여기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라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는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라고 번역했습니다. 외부 모양이 초라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지금 지어지고 있는 스룹바벨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작은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것도 시작은 다 미약하고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들과 전략적으로 중요한 작은 날들의 알갱이들'로 엮어지고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큰 것 한방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도박적이고 투기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개 2:3절에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하셨습니다.
스룹바벨이 성전 기초를 놓고 힘겹게 지어가는 성전건축을 바라보는 자들 중에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라고 여기면서 함께 참여 하기보다는 방관자와 방해자로 있는 이들에게 작은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함께 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외부의 모습보다는 하나님의 성전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규모에 논리에 빠져서 외부의 모습만을 붙잡고 쫓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영광으로 계시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드나드는 이들이 많을지라도 그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랄 수 없습니다.
이전의 솔로몬 성전이 아무리 웅장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을 때 돌무더기가 되고 말앗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헤롯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하여도,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요한 2:16절)과 "강도의 소굴"(누가 19:46절)로 만들었기에 헤롯 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할" 정도로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작지만 결코 작은 성전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왜소할지라도 그 성전을 계획하시고 지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 성전은 지극히 큰 일이었습니다. 어디 성전에 국한된 일이겠습니까? 주님의 교회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일 작은 일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그 사역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면 다 크고 위대합니다.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울왕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을 자를 뽑을 때 외모를 보고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향하여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씀으로 사무엘의 보는 관점을 교정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째인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눈이 팔려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해서 '작은 일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작고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본질로 삼고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라면 죽도록 충성하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작은 것이 큰 차이를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고,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면 안됩니다. 작은 실수가 큰 사고가 되고, 작은 상처가 큰 병이되고, 작은 불씨가 큰 화재가 됩니다.
스몰 스탭이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큰 차이에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것, 작고 미미한 것이 인생을 갈라놓습니다. 인생은 거기서 거긴데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큰 것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큰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작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을 조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작은 죄를 삼갈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으로 큰 일을 이루십니다.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고 중요히 여기고 귀히여기며 잘 감당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 앞에서, 시련과 환난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초라함,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하시면서 결코 너희의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라고 교훈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믿음이 있다면, 자기 학대, 자기 멸시에 빠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안다면, 자신을 멸시하며 스스로 낙심하며 의기소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고, 작은 일의 날인 세월을 아끼고 아껴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작은 책임을 맡았든지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떠한 작은 정성이든지, 어떠한 작은 친절이든지, 어떠한 작은 의무든지,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멸시하지 말고 잘 해야 될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할 자가 누구냐?하신 하나님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않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작기 때문에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작다고 하지 않고 그것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겨 멸시하지 않기 때문에 귀히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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