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미 1:1~7) 본문

하나님의 질문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미 1:1~7)

유앙겔리온 2021. 4. 21. 20:51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미 1:1~7

미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1: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미1: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1: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미1: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미1: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미1: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오늘은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하신 질문을 제목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미가는 "여호와 같은 자 누구신가?"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갓지파의 조그마한 시골마을인 모레셋 출신으로 유다의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선지자입니다. 미가가 활동하고 소개되고 있는 유다 왕들이 다스리던 이 시대는 세계주요 지역에서 철기무기를 앞세워서 패권을 겨루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서구 유럽은 서구 유럽대로, 동양은 동양대로, 중동은 중동대로 패권다툼이 치열했던 떄였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역시 이 혼돈역사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미가는 이 혼란의 시대를 헤처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통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자세히 들을지어다"라고 권고했습니다.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듣고 싶어한 것만 듣고, 자신이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고자 하면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되고 세상 방법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미혹하는 소리에 마음과 귀를 빼앗기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혼란과 위기의 때가 오면 신앙을 강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신앙이 약해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 세계적 또는 국가적 재난과 재해는 인류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지금 우리는 일년이 넘고 이년을 채워가는 코로나19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 고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총 확진자 수가 1억 4천 여명에 다다르고, 사망 자는 3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더 피해를 입힐지 언제 완전한 종식이 될지 모두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퓨리서치가 14개 경제 선진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종교와 가족 관계 등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19로 인해 14개국 모두 종교적 신앙이 '강해졌다'는 응답이 '약해졌다'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난이 세계인들로 하여금 종교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퓨리서치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인해 종교성이 강해진 서양 다른 나라와 다르게 국민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성에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14개국 전체 중 종교적 신앙이 '약해졌다'는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해 개신교인 신앙이 약해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서양은 재난의 고통이 종교적 성찰로 이어지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지, 무엇보다 재난의 때에 한국 개신교의 신앙이 강화되지 못하고 약화되었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코로나19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질문이요 과제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은 이런 위기와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세상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가 당시에도 남북 왕조의 중심이었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여 사는 일에 흠뻑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으로 세운 산당과 목상 같은 우상들이 즐비했고, 백성들은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며 저마다 깊은 영적 간음에 빠져 있었으며 모두가 하나님을 의지하려기보다는 대제국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이 혼란과 재난의 때에 신앙이 강해졌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가를 통해서 이 시대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엄중한 인식을 촉구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3~4절)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대로의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마치 양초가 녹아내리듯이, 홍수에 쏟아지는 물과 같이 걷잡을 수 없이 처참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며, 이스라엘 족속의 죄"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의 허물, 여기서 "허물"(폐솨)은 보통 반역, 반란, 배반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 모압의 반역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거나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야곱의 허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반역했고, 하나님의 소유를 부당하게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의 "죄"(하토트)는 "과녁을 놓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화살은 제대로 날아가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율법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과녁을 빗나가서 엉뚱한 곳을 맞춘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기준, 즉 말씀에서 떠나있는 것이 야곱의 허물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죄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따라야 할 사마리아가 오히려 반역했으며, 오직 여호와만을 경배해야 할 예루살렘이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야곱이, 왜 이스라엘이 반역을 하며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을 떠났습니까?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의 상징적인 인물이 야곱아닙까? 그는 모태에서부터 욕망의 상징적인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열심을 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와 능력으로 욕망을 성취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초 위에 세워진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파멸당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마가는 "농부가 밭을 경작할 때 나오는 돌들을 한쪽 구석에 쌓아둔 돌무더기처럼 폐허가 될 것이고, 들판에 돌이 쏟아져서 아무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과 같이 될 것이라"했습니다. 

  우리가 서야하고 세워가야 할 삶은 기초, 신앙의 기초, 교회의 기초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욕망이 기초가 되면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통이 돌이 되어야 하고, 그가 기초가 되며 터가 되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욕망위에 세워져갔기 때문에 양초가 불에 녹아내리듯이, 홍수에 쏟아지는 물과 같이 되었고, 밭 한쪽 구석에 쌓아둔 돌무더기처럼 폐허가 되고 들판에 돌이 쏟아져서 마무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죄의 결과를 교훈 삼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미가가 활동하며 살던 시대는 온 세상이 전쟁과 혼란 속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하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를 통과하고 살아가는 길은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서 나오는 꾀와 머리와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이가 없는 줄로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도 미가 시대처럼 혼돈의 시대임이 분명합니다. 이 때에도 우리가 들어야 하고 듣되 자세히 들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더욱 강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