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스가랴 3:1~5) 본문

하나님의 질문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스가랴 3:1~5)

유앙겔리온 2021. 5. 31. 09:44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스가랴 3:1~5

슥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슥3: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슥3: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슥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3: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 대한 표현만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 전부를 향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또한 오늘 예수를 믿고 교회를 입출하며 하루하루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하신 하나님의 질문을 제목 삼아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신 이 표현이 왜 여기서 나온 것입니까? 여기에 나오는 대제사장은 가나안 정복의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아닌,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로서 수룹바벨과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무리들 중의 대제장입니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면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초라한 몰골이라고 비난하고 참소하므로 인해서 이 때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면서 꺼내신 말씀이 바로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셨습니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하나님이 택하신 예루살렘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이 질문을 제목 삼아서 말씀을 나눔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나무"란 어떤 나무입니까? 좋은 나무일까요? 나쁜 나무일까요?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나무를 불에 그슬렸다가 다 타기 전에 그슬린 상태로 꺼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불에 그슬리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불에 그슬리면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할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꺼내든 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매우 좋은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워진 옷을 벗기라고 하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며 정결한 관을 씌워주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표현은 결코 나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해서 그는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서 더러운 이방나라에서 성장하고 부정한 땅에서 대제사장이 되었는데, 그가 어찌 거룩한 땅, 약속의 땅에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는 그 나름으로는 일리가 없다할 수 없습니다. 일견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비난은 오늘날 교회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비난일 수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만을 따지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섭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혀 달라집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의 동생 요셉을 팔아먹어버린 일이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왕의 수하에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은 천하에 못쓸 일을 한 것입니다. 정의와 진리 안에서 생각한다면 용서할 수 없는 대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섭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요셉의 고백대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5,7,8)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했던 요셉은 그의 형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마음이 요셉의 마음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요셉보다 더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바라보시고 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그렇게 비난하는 사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잘 하는 일이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비난 받고 있던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일컬어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하시면 사탄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에 곁에 서서 언제라도 도울 준비를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부적절한 처신을 고발한 사탄은 칭찬을 받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책망을 받습니다. 왜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책망하고 처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한' 주님은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부족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불타고 있던 나무를 불 속에서 꺼내셨다는 것입니다. 꺼내놓고 보니 형편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실 때 한없이 마음이 아픈 나무가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꺼내시면서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랫동안 고난의 풀무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죄 때문에 그들은 이방나라의 포로생활이란 고난의 불꽃 속에 던져 넣어졌습니다. 또한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그들의 파멸을 위하여 온갖 것으로 시험의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타기 전에 불꽃 가운데서 끌어내기 위하여 섬세한 손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꺼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타는 불 가운데서 건저내진 그슬린 나무 같은 존재가 바로 제사장 여호수아이며, 하나님 백성들이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질병에서, 타다 남았습니다. 죄와 욕망의 세상에서 타다 남았습니다. 절망과 실패와 상처에서 타다 남았습니다. 우리가 다 타버리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덤으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에 그슬리고, 세상의 추한 욕망에 타다 남은 막대기 같지만,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건져내셔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연약하고, 이렇게 예배할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여전히 이 시간도 우리를 애타게 찾으시고 기다리심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현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위치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 천사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서 있다"는 표현은 제사장의 직무를 나타내는 기술적인 용어입니다(신 10:8, 대하 29:11). 그는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곧에 가장 적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주 앞에 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무입니다. 왜 그럴까요? 불에 그슬린 나무, 불에 넣어져서 타다만 나무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건축자가 이 나무가지를 발견하고 집 한쪽 모퉁에라도 사용해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인 하나님 인정과 전적인 하나님 의지와 하나님께 맡기는 자일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이들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아무 할말이 없는 사람,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불과 같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 하나님, 여기 "불에서 막 꺼낸 그슬린 나무가지와 같은 내가 있나이다. 주여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하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