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렘 23:23~32) 본문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렘 23:23~32
렘23: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렘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렘23: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렘23: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렘23:27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렘23: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렘23: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23: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렘23: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렘23: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은 28절입니다.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꿈을 꾼 선지자'와 '내 말을 받은 자'가 대조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은 꿈을 꾼 선지자, 자기 꿈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자들을 가리켜 '겨'라고 비유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을 말하는 자를 '알곡'이라 비유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질문하셨던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겨와 알곡'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겨는 곡식의 껍질을 일컫는 말로서 속이 텅비어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알곡은 겉과 속이 같습니다. 속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겨는 가짜고 알곡은 진짜인 것입니다. 이는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고 대조되는 가치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겨와 알곡'은 '거짓 선지자들과 참된 선지자'를 비교해서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두 개의 현저하게 다른 물질이 함께 비교되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타작과 저장과정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곡식을 추수하여 타작마당에서 타작을 합니다. 타작을 하면 알곡뿐아니라 겨와 작은 돌맹이들과 지프라기들이 섞이게 되고 이것을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타작마당은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 위에 있습니다. 바람을 이용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언덕 위에서 부는 사람에 날리면 알곡은 가까운 곳에, 겨와 지프라기들은 먼 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모아서 알곡은 창고에 저장하고 겨와 지프라기 같은 것들은 불에 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시대에도 오늘날에 못지 않게 가짜 뉴스가 가득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가짜 뉴스가 파급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가까 뉴스가 파급력이 크냐하면, 전하는 자들이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자신들의 욕망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짜 뉴스에 의해서 당시에 유다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진짜 뉴스에 고개를 돌려 버렸고 외면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40년 전부터 포로기가 시작된 때까지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멸망을 앞두고 극에 달한 유다의 죄악과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열심히 전하였지만, 유다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아무도 그의 예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한 메세지는 안타깝게도 유다가 망하고 난 다음에서야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때에 겨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면서 마치 사실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마치 하나님의 계시인양 꾸미기 위해서 "내가 꿈에 보았다! 내가 꿈에 계시를 받았다!"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했습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특정한 장소에 가두여 놓는 일을 서슴치 않게 자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3절에,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하셨고 24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하시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만의 하나님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서는 자기만의 하나님으로 만든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욕심을 채울 수 있다면 없는 말도 만들어내고, 있지도 않는 일을 만들어냅니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패배자이고 잘못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 이야기는 실제로는 모두 조작된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꾸며낸 일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거짓 꿈 이야기는 결국 백성들을 엉뚱한 길로 들어서게 하는 일이며,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처럼 꿈 때문에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일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30절에서,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한 자들이라"고 하셨고 "이들을 내가 치리라"하셨습니다.
알곡과 같은 참된 선지자는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열심으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만을 전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불로 태우듯 회개하며 양심의 가책과 충격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레미야가 전한 메세지는 유다가 망하고서야 사실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진실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겨는 아무리 우기고 포장을 하고 가꾸어도 겨일뿐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겨는 결국 바람에 날려가게 됩니다. 알곡은 불과 같고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아서 죄악을 불태우고 거짓의 바위를 부숴뜨릴 수 있습니다. 알곡은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와 참된 선지자는 겨와 알곡처럼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와 알곡을 구분하는 눈을 가져야 하듯이 거짓 선지자와 참된 선지자를 구분하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자들을 주의하여 속지 말아야 하고 그들이 말하는 구부러진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고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가짜 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예레미야시대보다 훨씬 더 가짜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일 것입니다. 이럴 때야 말로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과 교회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짜 뉴스를 추종하고 따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선동선전에 능한 거짓선지자들의 충동적인 열정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겨와 알곡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말씀을 성실하게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귀 기울여 듣는 하나님의 일군들과 백성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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