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네가 무엇을 보느냐?(예레미야 1:11~19) 본문

하나님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예레미야 1:11~19)

유앙겔리온 2021. 1. 11. 21:39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 1:11~19

렘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렘1: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렘1: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렘1: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렘1: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1: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렘1: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렘1: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렘1:19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자신이 쓸 일꾼으로 부르시면서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으로 이 종을 설득하셔도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런 일을 하기에는 부적격자입니다.'라고 심약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화제를 전환시켜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네가 아이인 것, 네가 말할 줄을 모르는 것, 네가 처한 상황, 나도 다 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보느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아무리 달변가라도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모든 나라의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받았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눈 높이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는 눈을 가졌느냐 못가졌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하고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기도하는 중에 그 시대에 대한 두 가지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북에서 남으로 기울여져 펄펄 끓고 있는 가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셔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합니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잘 보았다"는 칭찬과 함께 "이는 내 말을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살구나무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가지는 어떠합니까? 살구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제일 먼저 그 가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희망의 나무이며 생명의 나무가지입니다. 긴 겨울을 지낼 때는 언제나 봄이 올꼬 하지만 봄은 반드시 살구나무에 피는 꽃같이 그렇게 오게 됩니다. 안올 수 없는 것이 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가지의 환상을 보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일은 이와같이 더딘 것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본 살구나무가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재촉하셔서 그대로 속히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을 확인하도록 하는 자연계시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계시를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본 살구나무는 히브리말로 '솨케드'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아몬드"라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솨케드는 나무 중에서 '가장 일찌기' 꽃을 피우는 나무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살구나무라는 '솨케드'란 단어가 어디서 왔냐면 '솨카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 뜻은 '경계하다', 즉 '잠자지 않는', '밤새우는' 따라서(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을 감시하다':-재촉하다, 남아 있다, 깨우다, ~을 망보다.'와 같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그러니까 살구나무의 어근은 "경계하다, 잠자지 않고 밤새워 감시하다, 망보고 지켜본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야가 본 살구나무 가지와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잘 보았다"고 칭찬해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살구나무가지의 환상을 보고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속히 이루어질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가 본 것에 대해서 재해석해 주시므로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가운데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하고 나아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살구나무 가지 환상을 본 예레미야 선지자는 민족이 고난과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낙심하거나 그의 나라와 민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내일과 장래가 다시 복원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구원의 길을 제시해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자신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살구나무가지의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첫번째 질문에 답변을 하고 숨돌리고 있을 틈도 없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서 질문을 이어 가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수평을 잘 유지하고 있는 안정적인 끓는 가마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펄펄 끓고 있는 가마가 수평을 잃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끓는 가마가 안정을 주려면 기울여짐이 없어야 합니다. 끓는 가마솥은 수평이 중요합니다.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기울여져 있다고 하면 기울진 면으로 끓고 있는 것이 흘러넘치게 되고 끓는 것이 흐르는 곳에는 재앙이 됩니다. 

  예레미야가 두번째 본 기울어 끓고 있는 가마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은 두렵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15~16절을 보면,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자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1:17~19절)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 살면서 이런 것 저런 것 보면서 삽니다. 환난의 경한 것과 중 한 것, 기쁨의 크고 작은 것들을 보며 삽니다. 현재 일과 장래 일을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주님이 보시는 것과 같다면 예레미야처럼 칭찬을 받을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삶의 다양한 관심사 중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면서 삽니까?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셨던 주님께서  "네가 지금 무엇을 보느냐?" 물으신다면 우리의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사명의 자리에서 주님이 보시는 것을 우리도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꼭 기억해두고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을 보던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며 우리의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어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