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사 50:1~3) 본문

하나님의 질문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사 50:1~3)

유앙겔리온 2021. 1. 8. 06:28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사 50:1~3

사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사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사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기도 하면서도 사정이 어렵거나 환난이 혹독해지면 마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것처럼 불평하고 하나님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미새 한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썩은 나뭇가지 위에다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를 본 농부는 그 둥지를 가만 나눌 수가 없어서 헐어버렸습니다. 새는 다음날도 똑같은 자리에 다시 둥지를 짓기 시작했지만 농부는 그것마저 헐어냈습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마침내 새는 그 가지를 버리고 다른 가지로 옮겨 둥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새가 안전한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것을 보며 비로소 농부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 모를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실한 성도들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뜻 모를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곰곰히 살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정확히 알고 계시며 무엇보다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은 3가지 상태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쫓겨난 아내의 상태"였습니다. 1절 상반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둘째로는 "빚진 채주에게 갚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팔아 넘긴 상태"였습니다. 1절 중반절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했습니다. 셋째로 "그들의 삶의 터전은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와서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는 황무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2절 상반절에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했습니다. 

  이런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대부분의 인생들의 반응은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탓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말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된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했습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한 것처럼, 아버지가 빚 때문에 자식을 빚쟁이에게 팔아넘긴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런 것들을 막지 못하고, 이런 것에서 그들을 구하여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힘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동하기를 차라리 하나님 믿지 말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신을 믿자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에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런 생각을 단호하게 부정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 하반절에서  "너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 보냄을 받았느니라"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원인이 무효이면 결과도 무효입니다. 하나님은 이혼증서를 써주신적이 없으시며, 하나님은 빚을 갚을 수가 없어서 아들을 채주에게 넘겨야 할 만큼 가난한 하나님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도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는 곳이되었지만 여호와의 집인 성전과 다윗의 보좌가 있던 곳입니다. 역사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버린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유다민족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자신의 연단의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우리를 이렇게 고난 가운데 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문제를 주실 때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변화하라고 주신 기회입니다. 방해물과 환경을 치우고 바꾸려는 시도부터 하니까 원망이 많아지고 고통에 빠지는 것입니다. 저 방해물, 저 원수, 저 문제 하면서 거기에 휘감기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여건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이 환경과 여견 가운데 있는 자신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 환경과 여건으로 오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그 해결의 문제도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들이 고난받은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이스라엘이 능력의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난당함을 경고하시거나 미리 막으시지만 우리가 경청하지 않았고 막으시는 손길을 뿌리치고 완고하게 제 갈길을 간 것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렇했던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달아났고, 영접하지 않았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모으려 해도 흩어졌습니다. 구하시기 위해서 왔으나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이 내미는 손길을 어지없이 거절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바다를 마르게 하시고,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시며,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습니다. 

사람은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사람을 건지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손이 닿지 않아 놓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능력이 부족하거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라도 무엇이든지 구속하고 건질 수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그 어떤 경우도 짧아지지 않습니다. 짧아질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 때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