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잊겠느냐?(이사야 49:14~17) 본문
잊겠느냐?
이사야 49:14~17
사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49: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극단적인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가 힘든 시기라는 것입니다. 장기화 되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코로나 블루를 경험한 이가 10명 중에 4명이라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처럼 살면서 힘든 일을 만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 주께서 나를 잊으셨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시온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바벨론을 통하여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들을 잊어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고 사랑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장탄식을하면서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여기시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잊지 않으신다'는 비유로 몇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인의 모성애를 예로 들어 말씀해주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정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인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자기 태에서 난 자식을 잊고 긍휼히 여기지 않는 그런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없겠지만 혹 인간들에게서는 불행하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 옛날이나 또 오늘날에도 어머니들 가운데는 자기가 낳은 아기를 혹은 잊어버리고 또는 저버리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약점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인간은 무력하게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처지에 의해서 그렇게 도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결코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항상 지니고 다니시면서 잊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새겼다'는 원문, '하카크'의 뜻이 "파다, 제정하다, 기입하다, 통치하다" 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메모지가 없어서 손바닥에 임시로 기록하는 차원이 아니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제정을 하고 기입을 하여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메모장도 귀한 시대에 사람들은 귀중한 정보를 손바닥에다 썼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문신을 세기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의 역경 중에서 절망을 토로하며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이 어디있겠습니까?
고대 세계에서 주인이 노예의 이름을 자신의 손이나 팔에 새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주인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오히려 종들이 주인의 표식을 팔이나 손에 새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종이면서 자신의 백성인 그들을 손바닥에 새긴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그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하지 않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전부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너에 관한 모든 것과 너에게 관계된 것을 다 내가 나의 손바닥에 두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셨으니 쓴 것이 아니라 새겨놓은 것입니다. 지워지지 않습니다. 손바닥에 새겼으니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잊지 아니할뿐더러 언제나 보호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으니 언제나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누가 빼앗겠습니까?
이 생명의 음성을 만난 이스라엘은 다시 힘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고자 회개와 각성의 피눈물을 쏟아 마침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선민의 자리를 회복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도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그냥 보통사람이 아니라 '너는 나의 손바닥을 후벼파서 그 손바닥에 새긴바 된 특별한 존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항상 지켜보시고, 영원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항상 우리 앞에 함께 계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셋째로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내가 너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벽은 안전과 보호를 상징합니다. 집의 벽은 도적에 의하여 침투되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벽은 적의 침략과 공격에 의하여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는 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벽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성벽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손바닥에 새긴 이름처럼 하나님의 눈앞에 허물어진 성벽이 있으면 그것에 마음을 쓰실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의 성벽은 다 무너지고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성벽이 내 앞에는 여전히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 앞에서는 없어졌으나 하나님 앞에는 그냥 그대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사렘의 물질적인 성벽은 무너져 없어졌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은 하나님 앞에 항상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성벽만 그 앞에 놓고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허물어진 성벽, 폐허가 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늘 그분 앞에 두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곧 무너진 것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눈 앞에 늘 어른거리니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비유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이 사람의 눈에는 물론 보이지 않았으나 하나님 앞에는 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재건할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잊으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어느 때보다도 이 대림절에 이 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죄악 가운데서 건지시기 위하여 그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네 자녀들은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너를 무너뜨리고 꼼짝 못하게 했던 적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70인역(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에 '건축자들'로 번역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서둘러 귀환할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를 재건할 사람들은 곧 돌아오고 너를 파괴한 자들은 곧 떠날 것이다.(우리말성경)" 이 성경의 기록은 스룹바벨과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가 포함된 귀향민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때 회복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 마음 판에 깊이 새기시고 그 백성이 승리하기까지 도우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힘든 시간이 계속되고 쉬 지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이 있어도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잊지 아니하시니 우리도 또한 하나님을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어떠한 곤경에 처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잊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섬기면 반드시 크게 웃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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