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24:1~10) 본문

하나님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24:1~10)

유앙겔리온 2021. 2. 1. 13:52

네가 무엇을 보느냐?
렘 24:1~10

렘2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렘24: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렘24: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렘24: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24: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렘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24: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렘24: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렘24: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세번씩이나 질문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을 때(1:11)와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져 있는 끓고 있는 가마"를 보았을 때(1:13), 그리고 오늘 본문에 소개하고 있는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셔서 각각 "네가 무엇을 보느냐?"하고 질문하셨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가 "성전 앞에 놓인 두 무화과 광주리"를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질문하신 "네가 무엇을 보느냐?"하신 질문을 제목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나 그 열매인 무화과는 하나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성전 앞에 놓인 두 무화과 광주리"를 환상 중에 보여주셨습니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두 광주리에 담긴 무화과를 보고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셔서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본대로 그대로 대답합니다.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예레미야가 본 두 무화과 광주리에 대한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제 2차 포로로 끌려간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약속과는 달리 손쉽게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유다는 침략을 당했고 파괴되었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 백성인 유대 백성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에 남거나 애굽으로 피난간 백성들입니다. 당시에 보통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내린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경멸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반면에 유다에 남아 있거나 애굽이나 인근 나라들로 피난한 자들은 의로운 존재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남아있게 되었고 피하게 되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본 하나님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른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본 광주리 중에 "좋은 무화과 광주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5~7절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도 비록 나라가 멸망해 가고,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하는 것보다는, 유다 땅에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남은 백성들이 좋은 무화과 광주리이고,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사람들이 나쁜 무화과 광주리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짓선지자들은 그렇게 메세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 상식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유다 사람들을 일반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좋은 무화과'라는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셨던 진정한 '남은 자'였으며 그들이야 말로 지극히 '좋은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였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고난과 징계를 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난과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징계를 달게 받고 그에게 돌아온 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배푸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주시는 고난의 목적은 그들을 욕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새롭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어떻게 보면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처음부터 질 좋은 무화과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포로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았고 돌아왔고 회개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었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전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허락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좋은 무화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본 "나쁜 무화과 광주리"는 8~10절 말씀을 통해서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기 때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면서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자들과 애굽에 피난하여 살고 있는 자들을 가리켜 '광주리에 담긴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상하고 썩어서 먹을 수 없는 무화과와 같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버려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왜,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도망가거나 자기가 살던 땅에 남은 자들이 나쁜 무화과로 취급을 받아 하나님께 버려지는 것이라 하셨습니까?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신 심판의 경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따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도망간 자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보다는 당장의 위험을 피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달아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자신들을 의롭게 여겼고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유다 백성의 죄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죄와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볍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어서 심판에서 벗어났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졌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는다면 '나쁜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로 취급당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예루사렘에 머물러 있던 이들과 애굽으로 달아난 이들은 말씀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꾀를 의지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자기 꾀만 의지하고 자기 힘만 믿으며 사는 자들의 상황은 어쩌다 좋아 보일수도 있습니다. 당장 한두번은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참된 피난처는 하나님 한분이심을 믿으며 우리의 자신의 힘을 빼야 합니다. 자신의 꾀를 버려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만이 그것이 사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한 두번 자신의 꾀로 위험을 묘면하고 어려움을 피했다고 해서 항상 그러리라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극히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사건이 자신을 피해간 것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자신이 당하였기 때문에 아프고 힘들지만 그 기회를 회개의 기회로 삼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난을 자처하고 고난의 때에 자신의 죄악을 살피며서 회개하는 자가 될 때 극히 좋은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과 징계 앞에서 핑계되지 않고 피하지 않고 지금 울며 씨를 뿌리려 나가는 자, 현재 많이 수고하는 자, 현재 많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 현재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헌신을 하고 고생을 하는 자가 '좋은 무화과 광주리'의 축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