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14) 본문

하나님의 질문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14)

유앙겔리온 2021. 1. 8. 06:12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9~14

왕상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우리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의지하면서 이룬 대단한 승리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승리자가 지금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까지 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형편을 본 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이세벨이라는 악녀를 보았고, 그 악녀가 얼마나 힘이 있는 여자인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문제와 위험을 보게 되었을 때, 자신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세상에 주눅이 들어 낙심한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 모습입니까? 우리도 언제나 엘리야와 같은 영적 침체의 전철을 밟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호렙산 굴에 도망하여 들어가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조용히 찾아오셔서 두번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 13절)

  오늘은 이 질문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엘리야에게 이러한 말씀으로 질문하셨을까요? 정말 무엇 때문에 엘리야가 이곳에 있는지를 몰라서 물으신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본의는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네가 집에서, 너의 일터에서 이다지도 멀리까지 와 있단 말인가? 네가 나보다 이세벨을 더 무서워 하여 여기에 피하여 숨었단말이냐? 네가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할 수는 없었단 말이냐?"
  너마져 그렇게 믿음을 잃고 겁게 질려 있는게 옳은 일이냐?묻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에는 유독 "너" 라는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해낸 네가, 위대한 예언자이며 결단력으로 그다지도 명성을 떨쳤던 네가, 어떻게 그렇게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여기 있느냐" 너는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있다는 책망이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기 이 굴 속에 있느냐? 이곳이 여호와의 예언자로서 숨어 있어도 되는 곳이냐? 지금이 너 같은 사람이 은신할 때냐?" 이것은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너로 하여금 지금 그곳에 있게 하는지 자신을 살펴보란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당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며, 우리들이 행할 바 책무를 다하는 처지에 있는지 아닌지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소명하시는 곳, 내 직무가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쓸모가 있는 곳에 있는가?" 물어야 하고 그 물음에 응답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자신을 살펴보고서 대답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만군의 하나님께 열심이 유별하여"이런 저런 일을 당하여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을 피하여 여기까지 와 있나이다.하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 유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하다보니 이해 관계자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자신이 일하던 곳을 떠나서 굴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에서 선지자 노릇하다가 이 문제를 만나서 호렙산에 있는 굴로 도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언제나 어느시대에나 아합과 이세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왕비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럼으로 가장 복음적인 국가, 복음적인 민족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순교적 신앙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유별난 사람이었기에 유별난 시험을 만났던 것입니다. 열심이 특심하였기 때문에 일도 치루어내기도 하지만 또한 유별난 사람은 유별나게 시험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던 엘리야와 함께 해 주셨고 그를 놀랍게 사용하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적수도 많았고 대적도 많았습니다.

  돈 버는데 유별난 사람, 일하는데 유별난 사람,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유별난 사람, 무엇을 할 때 꼼꼼한데 유별난 사람, 착하고 의로운데 유별난 사람...... 한결같이 다 욕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는 아닙니다.
 
  열심이 유별한 사람 엘리야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14절에 보면 "오직 나만 남았사오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 혼자인 것만 같습니다. 도저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자기 앞에 놓인 대적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앞 뒤 좌우 길이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어도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기적의 사람에게도 아무 기적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이 특심한 자가 가장 주의 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실로 생명의 위협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특심한 것을 끝까지 가져야 합니다. 열심히 유별난 사람을 하나님은 챙기십니다.

  호렙산의 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찾아오셔서 "엘리야야 네가 왜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그 곳이 아니라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는 자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에는 반드시 동일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산 호렙이기는하다만은 그곳은 굴속이 아니냐? 네가 왜 굴 속에 있느냐? 하신 것입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야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1-12절을 다시 봅니다."여호와께서 이르시되'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했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은 모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 그 임재의 상징으로 일으키시곤 하신 현상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과 지진과 불을 엘리야에게 보여주심으로써 천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그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엘리야와 함께하고 계심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주어진 하나님의 질문으로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한때 두려움과 비겁함과 낙망과 자포자기 속에서 초라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비겁함과 낙망과 자포자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사명의 자리에서 도망치고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가정, 직장에서 사명자의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나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있어야 할 자리,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포기하고 낙망하고 두려워서 변명하며 머물지 말아야 할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의지하여 다시 소명의 자리 내  믿음의 자의 자리로 나아가 열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의 자리를 회피하거나 도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