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물으러 가느냐?(왕하 1:1~3) 본문

하나님의 질문

물으러 가느냐?(왕하 1:1~3)

유앙겔리온 2021. 1. 8. 06:13

물으러 가느냐?
왕하 1:1~3

왕하1: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왕하1: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왕하1: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압은 이스라엘을 배반하였고 이 일과 연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하시야 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왕궁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습니다.

  아무리 익숙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이만 난간 같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이라도 부주의하면 난간에서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수도 있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질병 앞에서 강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두려워하게 되고 죽음 앞에서 무엇인가에 의지해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들게 된 아하시야 왕의 처신입니다. 자기가 병에서 나아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지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신하를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아하시야의 신앙상태와 영적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감히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북이스라엘 아하시야왕 때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게 하고,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드는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겠습니까? 신앙인이라면 다 아는 일입니다. 신앙인에게 우연이란게 있겠습니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가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하시야, '여호와께서 손을 잡으셨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손을 잡아주셔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히시야는 그의 이름대로 여호와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난간에 떨어지고 병든 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손을 잡는 대신 그와 반대로 바알세붑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삶속에 문제가 생길때 정말 하나님을 제일 먼저 의지합니까? 돈부터 생각하고, 사람부터 생각하면서 그것들만을 의지한다면 이것은 아하시야가 범한 것과 동일한 영적 불신앙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삶속에 있는 바알세불을 의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왜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에그론의 신에게 물었을까요? 아하시야는 그의 아버지 아합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수없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아합시대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용하셔서 전무후무한 이적과 기적을 북이스라엘에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이 놀라운 일들이 그냥 쓸데없이 일어나 우연한 일에 불과한 것처럼 행동하였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 그의 마음을 겸비케 하는 대신 바알을 따르고 마침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그론이 어디며 바알세붑은 또 무엇입니까? 에그론은 블레셋 나라의 다섯 성읍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알세붑은 '파리들의 주''파리들의 대왕'이라는 뜻을 가진 신입니다. 에그론에 살았던 불레셋 사람들은 이 신을 섬겼습니다. 이는 파리 떼에 의한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 신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겨난 우상숭배입니다. 지금 아하시야는 이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인가에 대해 물어오라고 그의 사자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자기네 신을 놔두고, 그 먼 곳까지 남의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으러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지금까지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겁먹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신 여호와란 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그들의 신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불레셋 신을 의지하여 물으려 왔다는 것은 여호와의 신을 무시해도 된다는 신호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에그론의 신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 즉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아하시야가 에그론의 바알셉붑에게 물으려 사신을 보냈다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시고는 하나님의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셔서 이렇게 전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하셨습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들을 듣고 돌이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해 주시는데도 불과하고 깨닫지 못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하시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해 주셔도 깨닫지 못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마음과 생각과 귀가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열려 있지 않고 내 생각과 내 고집으로 살아가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복음서에서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희는 깨달을 찐저"라는 말씀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안타깝게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가는가? 하시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문제가 생길 때 자신을 찾기를 바라십니다.  

  아하시야는 그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도 살고, 그의 왕국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 왕은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결국 그는 죽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난 이후로 그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행도, 질병도, 실패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기회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만 하면 모든 것은 기회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데 손 내밀어 도움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생들이 결정일 때 하나님께 물으려 가지 못하고 대용품을 찾습니다. 대용품을 의지하고 그것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하시야처럼 다른 것을 찾고 다른 것을 신처럼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섬겨야 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신데 사람이나, 환경이나, 물질이나, 권세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교훈삼아 다른 것을 찾고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찾고, 그 하나님께 묻고, 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함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