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기갈의 비유(암 8:11~14) 본문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재앙은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것입니다. 목마르고 배고푼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첫번째 원인이며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이 물과 양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3일 굶으면 담 안 넘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먹고 마시는 것은 인생의 가장 절박한 문제이며 인간다운 삶과 생명의 유지의 문제입니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단계설(Need Hierarchy Theory)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생리적 욕구, 기아를 면하고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욕구에서 성적 욕구까지를 포함합니다.
둘째는 안전욕구, 생리적 욕구가 충족된 후에 위험, 위협, 박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셋째는 사회적 욕구,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교적인 동료의식을 조성하기 위한 욕구로서 애정, 귀속, 사랑 등을 포함합니다. 넷째는 존경욕구, 자기 존경과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어합니다.
다섯째는 자아실현욕구로서 계속적인 자기 발전을 위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데 초점을 둔 욕구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인간적 욕구가 다 채워진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헛되다는 것입니다. '피곤함'이나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결코 '피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의 양식을 먹고 마시지 못하면 영적 사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것은 인간은 빵으로만, 물질적 조건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입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 육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을 가진 인간은 영적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 무가치해지고, 그것은 결국 죽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기근이 내릴 터인데, 밥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의 기근'입니다. 자연적 재해로 인한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말씀의 기근'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찾아 헤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젊고 씩씩한 남녀까지 쓰러지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애쓰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모스서를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 '종교적 생활'을 결코 버리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꼬박꼬박 지켜야 할 절기들을 잘 지켰고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이 말씀이 없고 형식과 껍데기만 남아 있어서 그러한 종교적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상태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이 '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물이 쏟아지지만 정막 마실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근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의 기근이 찾아왔는 데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니 말이 됩니까? 예루살렘 하늘이 번제의 연기로 가득찼는 데 말입니다.
말씀의 기갈은 나의 영적 상태와 상관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내가 죄악가운데 있으면 캄캄하지만 영적 상태가 맑아지고 깊어지면 말씀의 심오한데 까지 통달하게 됩니다.
타락했을 때의 특징은 말씀이 귀한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2:12, 7:13) 그리고, 타락했을 때는 자신의 이기적인 요구가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의 마음의 완악함을 버려야 합니다. 내 안에 상처, 쓴뿌리, 교만, 열등감 등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굳은 마음들을 날마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기경하여 부드러운 옥토 밭을 만들어야 합니다. 옥토 밭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씨가 마음에 뿌려진다 할지라도 땅 자체가 굳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항상 뿌리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 뿌리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복음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존하고, 물질을 의존하고, 세상의 재미를 의존하게 되면 뿌리가 약해집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구제불능'상태의 완악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나의 마음의 밭을 기경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들을 날마다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옛말에 '샘가에서 기갈 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라도 노력해 찾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넘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이런 자세와 태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말의 논리에 매이고 빠져사는 것은 곧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심판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분을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대면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기갈이 인생기갈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어떻게 가질지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워보고, 체크해 봅시다.
오늘 우리의 시대도 역시 말씀이 넘쳐납니다. 라디오와 TV는 이미 여러 채널을 갖고 있구요. 거기서 많은 설교와 강의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신앙서적과 성경공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은 "최종적인 심판"에 이른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영적 양식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말씀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말씀을 거두어 감으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이 될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미치고 환장한 시대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시대만큼 새로운 말씀만을 먹으려는 성도들이 늘어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말씀을 찾아, 새로운 프로그램과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 철새같은 성도들이 늘어날 수록 교회의 건강도는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말씀도 중요하고, 새로운 프로그램과 새로운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제대로 듣고 듣는 말씀을 깨닫아 순종하여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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