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여름실과 광주리의 환상(아모스 8:1-3) 본문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여름실과 광주리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여름실과 광주리를 보여 주시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아모스는 과일 광주리를 몇번이고 들여다보면서 이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름과일인데, 왜 여름과일광주리를 보여주시면서, 나에게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을까? 그러면서도 아모스는 일단 '여름실과 한 광주리'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눈에 보이는 대로 대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답을 하는 아모스나 이 본문을 읽는 우리에게나 여름과일은 아직은 여름과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을까? 이것을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여름과일은 단순하게 눈으로 보이는 그 여름과일을 넘어서 어떤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분명 여름과일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름과일이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여름과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여름실과 광주리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여름실과가 가득한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광주리에 어떤 실과가 들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포도일 수도 있고, 감람일 수도 있고, 무화과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과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과일인지를 밝히지 않은 것은 과일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름 실과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름실과 광주리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여름실과가 가득한 광주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죄악이 무르 익어 각득체워진 상태를 의미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실과의 특징들이 무엇입니까?
여름실과가 나무에 달렸을 때에는 참으로 탐스럽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던 영화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다 따버린 나무는 볼품 없이 초라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수확한 과일을 보관하는 기술이 발달되지 못하였으므로 금방 먹지 않으면 곧 썩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수박 참외 복봉아 포도 딸기 토마토 같은 것들은 모두 수분이 많아서 오래 저장 할 수 없는 과일들입니다. 이것들이 광주리에 담겨져 있다는 것은 곧 소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 앞에 심판이 임박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주리에 담긴 무르익어서 곧 상할 처지에 있는 여름실과와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1.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무르익어서 곧 터져서 부패할 지경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서의 하나님은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5:24). 하나님께서 아모스서를 통하여 요구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나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었고 오직 의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실로 평안을 얻으려면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암 5:1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스럽게 해드리지를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여름실과 광주리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름에 광주리에 여름과일들을 가득 담아놓은다면 잠깐은 보기에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얼마 못가서 곧 썩고 말 것을 상징하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여름은 신록의 계절입니다. 여름은 땀 흘리는 계절입니다. 여름에는 갖가지 질병들도 많습니다. 여름에는 나른합니다.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여름에는 물것도 많고 곤충들도 제 철입니다. 여치도 봅니다. 개미도 봅니다. 여름에는 여름 실과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린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아모스가 활동하던 여로보암 2세 때는 물질적인 풍요와 번영은 부족함 없이 풍성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소망이 없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열방과 유다의 죄를 합쳐 놓은 듯 온 땅에 관영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를 짓밟았고, 선민 의식으로 인한 교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심판이 초래되고 심판이 집행되면 누구도 피할 수 없게 됩니다(2:13-16).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누구든 예외 없이 타락의 길을 걷게 되듯 물질이 풍요하면 방탕하게 되고 언제든 방탕한 물질 생활은 종교적 타락을 가져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와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또한 이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여주는 것은 심판의 때가 가까이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라"(2절)하신 것입니다.
특이 하게도 히브리어로 "여름 실과" 즉 '카이츠'란 말은 '끝' 이란 단어와 같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여름 실과를 보여 줌은 이스라엘의 종말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모스는 여호와의 심판사상을 말하고 있는 선지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날을 "흉한 날"(6:3), "여호와의 날"(5:18), 때(4:2), "그날"(2:16)로 표시하였습니다.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도, 부강한 경제력도, 화려한 문화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종교적인 안전지대도 없습니다.
과일나무는 꽃이 필 때가 있으며 또한 탐스러운 과실을 맺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실을 수확을 해야 하고 그 떄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잘 익은 과일은 광주리에 오래 담아둘 수 없습니다. 그날이 되면 과일은 다 썩게 될 것이고 그리고 썩은 과일은 광주리째 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도 그렇습니다.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또한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도 그렇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내게서 멀리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이 내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긴장감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며, 또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3. 완전한 파멸을 예고 하신 것입니다.
3절에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약속의 땅인 이 가나안 땅에 이상적인 다윗왕국과 같은 힘있는 왕국이 실현될 것을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꼐서 친히 원수들을 쳐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올 것이며 그들의 왕국이 모든 나라를 지배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 기대를 여지없이 분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5:18,20)하셨습니다.
의는 행치 않고 여호와의 날이 축복의 날이요 좋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그 날은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궁전의 노래'는 최상류층만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를 맘껏 자랑하며 온갖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그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입니다.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더 이상 잔칫집이 아니라 초상집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축제의 노래는 사라지고, 처절한 애곡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시체가 얼마나 많은지 처처에 버려집니다. 시체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그들을 위해 매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대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난 지 30년이 되었을 때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이끄는 군사들에게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는 패전 국가를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수탈한 것으로 세계 역사가들이 평가하는 점을 감안할 때에 이스라엘이 멸망할 그때 그들이 겪은 아픔이 얼마나 컸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로 시체가 너무 많아서 여기 저기 버리게 될 것이라는 그 예언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성서는 많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집과 같습니다. 그 많은 기둥 중에 아모스는 바로 "공법과 공의"를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백성들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많은 성품 중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성품을 말하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균형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과 동시에 공의에 하나님이십니다. 무한히 용서도 하시지만 또한 절대로 그냥 넘어가시지 않는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냑심할 이유도 없고 또한 절대로 방심하고 무절제해서도 아니됩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이상 가운데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르익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도 않으며 불의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악에 합당한 심판을 내릴 것을 경고하시고 앞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권면의 말씀조차 하지 않으실 때가 올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심판의 말씀이라도 들려주실 때가 고맙고 감사한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외면적인 모습을 넘어서서 그것이 상징하는 바, 그것이 내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그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광주리에 한가득 담겨진 그 풍성한 과일을 보면서, 거기서 이스라엘 역사의 종국을 읽어낼 수 있는 상상력이 아모스에게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들 그저 놓여 있는 정물(靜物)로서의 여름과일을 보면서, 그 여름과일이 우리에게 무언으로 들려주는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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