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두 막대기의 비유(에스겔 37:13-23)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에스겔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두 막대기의 비유"입니다.
무 막대기는 나누어진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불행은 남과 북이 나누어진 것입니다. 남과 북이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 유대는 어떠했습니까? 사울왕과 다윗왕 솔로몬왕에 이르기까지 번영하는 나라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유대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유대를 배우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민족이 둘로 나뉘이면서 급속도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다가 결국은 북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나중에 남쪽 유다도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유대백성들의 이러한 비운은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것 때문이었습니다.
유대백성들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관계에 놓여져 있었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백성들은 이 언약관계를 수도 없이 깨뜨렸던 것입니다.
택한 백성들은 택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경쟁력이고 그것이 살길이고 땅에서 잘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길입니다.
둘째로, 나누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분열은 항상문제인 것입니다. 분열이 되면 싸워야 할 적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협력해야할 자신들이 서로 싸움을 하면서 힘을 소진시켜저바리는 것입니다. 유대백성들은 많은 내란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밖의 적을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안으로 싸우다 보면 당연히 밖을 소홀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차례차례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작은 것을 탐하다가 결국 큰 것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파이를 키워야 나누워 먹을 것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대백성들에게 아직도 언약관계가 유효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범죄한 처소에서 자신들을 정결케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누어진 두 민족을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하시며, 이미 사라져버린 다윗왕조를 복원해서 거기에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유대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오늘 이 두 막대기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친히 "막대기를 두개를 만들게 하시고 그 하나의 막대기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약속이었습니다.
이 상징적 행동은 둘로 나누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하나의 나라로 합쳐질 것을 암시해 줍니다.
실로 하나님 안에서 분열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 됨과 화합이 있을 뿐입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지만, 사단은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성도들은 협력해야 할 대상이지 싸우고 분열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같은 말로 합합시다. 같은 마음으로 합합시다. 같은 뜻으로 합해야 합니다.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떠하든지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다백성들은 오늘 영적으로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시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적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민족끼리 내분을 일삼음으로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싸움의 대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요 공중에 권세잡은 자들과 악한 마귀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
23절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신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나누어진 것도 그리고 힘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기도 하고 피난을 떠나서 나그네가 되기도한 것 이모든 것 이면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의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 이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문제가 다 하나님과 결부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나죽으나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살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비유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림줄의 비유(아모스 7:7~9) (0) | 2019.04.10 |
---|---|
메뚜기의 환상(아모스 7:1-3) (0) | 2019.04.10 |
녹슨 가마솥의 비유(에스겔 24:1-14) (0) | 2019.04.10 |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비유(에스겔 23:1-21) (0) | 2019.04.04 |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에스겔 17:1-10) (0) | 201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