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불에 타는 포도나무(에스겔 15:1-8)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에스겔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불에 타는 포도나무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포도나무는 구약성서의 이미지로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취하여 내어 옥토에 심은 참 포도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그 택한 백성 한 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포도나무로 경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나무요 마른 땅에서 난 가지입니다. 비록 그 근본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하니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강하게 만드시고(시 80:15) 자기의 이름과 영광을 거기에 두기로 하셨습니다
땅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정말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건축을 위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나무, 포도나무로는 나무 못하나 만들 수 없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비교한다면 다른 어느 수목보다 귀중한 나무입니다. 포도나무 열매는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한다고 삿 9:12, 13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포도나무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것은 엉겅퀴나 가시처럼 가치없고 쓸모없는 땅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가시나무는 그래도 가시 울타리에 쓰이기라도 하지만 포도나무 가지는 그런 데도 쓰이지 못합니다. 열매 맺지 못한 포도나무는 아무 용도에도 적합치 못합니다. 그 나무를 가지고는 아무 것도 제조하지 못합니다. 그릇을 걸 못 하나도 만들 수 없다고 오늘 본문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선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식물 중 어떤 것은 뿌리나 씨앗으로 또 다른 것은 열매 또는 잎이나 줄기로 우리들에게 유용합니다.
살림중의 나무들은 유실수가 아니라도 재목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다른 유실수 중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목제로 활용할 수 있는 나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이런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만일 포도나무가 유실수로서의 목적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재목으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나무는 아무 제조에도 소용이 없게 되면 마지막으로 불에 던질 화목이 됩니다(4절).
다른 어떤 것에도 적합치 않으면 이렇게라도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며 이것은 꼭 필요한 목적에 부합합니다. 화목 즉, 땔나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에도 쓸 수 있는 것을 땔감으로 사용한다면 살림살이를 잘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재목이 불붙는다면 아마 누군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슥 3:2)처럼 그것을 잡아채서 "이것은 불태우기 아깝다. 달리 더 좋은 데 쓸 수도 있을텐데" 라고 여겨서 불속에서 건저내기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포도나무가 불타며 게다가 그 양 끝과 가운데가 불 탔으면 아무도 그것을 불속에서 건질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도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5절)하셨습니다. 그 재조차 건질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열매를 맺여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포도나무가 열매를 잘 맺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 가지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포도송이는 언제나 새 가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가 달립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의 가지는 언제나 깨끗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지 치기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위치에 포도송이가 달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없는 가지나 흠이 있어 진액이 흐르는 가지나 병든가지는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지치기는 무자비한 일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활기에 넘치는 새 순으로부터 새롭고 건강한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시련을 당하고 있을 때 이것을 가치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욥기 14:7-9절에 보면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가운데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혹시 시련을 당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늙은 가지와 병든 가지를 가지치기 하여서 새움이 돋게 하시고 새로 심은 것과 같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가지치기에는 반드시 포도원 농부의 생각이 있는 것이며 포도원 경작자의 계획과 뜻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그리고 예수님은 다섯가지나 포도와 관련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일태면 눅 13:6~9의 "포도원의 무화과나무"의 비유, 마 20:1~16절의 "포도원 일꾼"의 비유, 마 9:17절의 "낡은 가죽부대 속의 새포도주"의 비유, 마 21:28~32절의 "두 아들의 비유", 그리고 마 21:33~41, 막 12:1~11, 눅 20:9~18절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본몬 말씀으로 되돌아가서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인자야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가지가 더 나은 것이 무엇이랴?"고 질문 했습니다.
과연 삼림중에 포도나무가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나무재질이나 그 모양새나 그런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닙니다. 포도송이를 풍성히 낸다는 것이 모든 나무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송이를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사용처가 없는 나무가 포도나무입니다.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건축 자재로도 쓸모가 없습니다. 물건을 걸 단단한 작은 못 하나도 만들수 없는 것이 포도나무가지인 것입니다. 연료로 쓰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별로 좋은 연료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물며 구부러지고 새까맣게 불에 탄 가지가 무익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쓸모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만 맺을 수있다고 하면 그 존재가 다른 곳에 쓸모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대단히 귀한 존재로 취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열매맺지 못할 뿐 아니라 불에 그을은 포도나무가지의 비유를 이스라엘과 그들이 살고 있는 수도 예루살렘에 적용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기껏 열매를 맺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먹을 수도 없는 쓴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5장 1-2절 말씀에 보면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이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고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라고 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쓸모없는 포도나무가 태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파멸을 의미합니다. 불에 타지 않는 포도나무도 그 나무 자체로는 아낄 것이 없는데 하물며 불에 타서 재가 되어가는 불에타는 포도나무를 아까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제 주제를 알고 포도송이를 내는 일을 힘써서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사명에 충성해야 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비유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에스겔 17:1-10) (0) | 2019.04.04 |
---|---|
부정한 여인의 비유(에스겔 16:6-22) (0) | 2019.04.04 |
유브라데 강에 던지워진 책(렘 51:59-64) (0) | 2019.04.04 |
감추인 돌(렘 43:8-13) (0) | 2019.04.04 |
밭을 삼의 비유(토지매입의 비유)(렘 32:1-15) (0) | 201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