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유브라데 강에 던지워진 책(렘 51:59-64)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유브라데 강에 던지워진 책의 비유"입니다.
어렸을 적에 저수지나 바닷가에 가서 놀면서 그 곳에다가 돌맹이를 던져넣어보았던 경험이 다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돌맹이 크기에 따라서 물속으로 가라앉은 소리도 다르고 속도도 다릅니다. 가볍고 작은 돌은 소리도 작고, 천천히 가라 않습니다. 그러나 무겁고 큰돌은 소리도 크고,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범죄 꾼들이 완전 범죄를 위하여 가끔 범죄의 결과물을 돌에다 묶어서 강이나 깊은 호수에 던져넣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돌을 달아 깊은 물 속으로 집어넣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다행히 묶어놓은 돌이 풀어져 다시 올라온다거나 혹은 누군가가 그 장소를 알고 깊은 물 속을 수색을 하지 않는다면 영영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에 바벨론성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면서
돌맹이를 묶어 유브라데강에 던져넣어버린 책과 같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받은 바벨론 멸망에 대한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그의 시종장인 스라야에게 맡겨 바벨론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가서 그 예고의 책을 읽으라는 사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택하여 니느웨로 보내서 니느웨의 멸망을 예고하게 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요나는 겁이 나서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결국은 큰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회개를 하고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전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은 니느웨 성은 뜻밖에도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회개하는 성을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에 멸망의 말씀을 전달하고 멸망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니느웨성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성 바벨론에도 하나님의 사람인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고한 하나님의 뜻을 글로써서 책을 만들어 그 종 스라야를 통해서 바벨론으로 보내서 읽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네가 바벨론에 이르면 그곳이 얼마나 굉장한 성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 성의 크기에, 강함에, 부요함에 완벽한 방비에 놀라 너는 이 정도면 이 성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스스로 이 말씀을 읽고 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스라야는 바벨론의 번영을 보았지만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는 바벨론이 "뿌리를 박는 것처럼 보였지만" (욥 5:3) 그곳이 멸망할 것과 이로 인하여 그 거민들도 저주를 받고 말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스라야는 병참감이었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바벨론 성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스라야는 믿음의 눈으로 바베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전하라는 사명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나처럼 도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찬란한 영광을 보고 그럴 듯한 계획에 매료될 수 있을지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가운데서 그러한 세상저인 "유행은 지나가며" 잠간 사이에 "끊어지고 영원히 황폐하리라" 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거룩한 경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에보면 바벨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책에다 돌을 묶어 유브라데강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을 실물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비유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스라야는 말씀대로 그 예고의 말씀을 읽어주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책에 돌을 묶어 메어달아 깊은 유브라데강 속으로 집어넣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 책 속에 포함된 말씀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표시였습니다. 이 상징적 행위에서 책을 가라앉게 한 것은 돌이었습니다. 돌이 아니었다면 책은 떠올랐을 것입니다.
돌을 물에 던지면 급히 빠져 내려가서 완전히 침몰 되듯이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멸망 당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8:21에도 보면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고를 듣고 또 그들의 멸망이 얼마나 철저하고 깊을 것인가를 비유로 보왔을 때 니느웨성처럼 회개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 깊은 바다에 던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어린아이를 기르고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삼가 주의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어린이가 자라면서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쁜 아이로 자라게 되면 그가 얼마나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삼가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낳았으면 기도와 말씀으로 잘 훈계하고 가르쳐서 실족한 자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그 낳은 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성을 향하여 실물로 교훈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이 회개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쓰여지지 아니하면 지금 보는 것처럼 돌에 묶인 책이 유브라데강으로 손살같이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며 다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을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바벨론 이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 실물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지 말고 니느웨처럼 회개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그 경고의 말씀을 경히 여겼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큰 나라이고 이 만큼 센 나라인데 감히 누가 이 나라 이민족을 멸명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그 큰 성 바벨론이 이 지구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지도를 펴서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벨론이란 나라나 성이 있는지? 없습니다.
아무리커도 아무리 세도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거역하고서는 결코 보장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정한 여인의 비유(에스겔 16:6-22) (0) | 2019.04.04 |
---|---|
불에 타는 포도나무(에스겔 15:1-8) (0) | 2019.04.04 |
감추인 돌(렘 43:8-13) (0) | 2019.04.04 |
밭을 삼의 비유(토지매입의 비유)(렘 32:1-15) (0) | 2019.04.04 |
줄과 멍에의 비유(렘 27:1-11) (0) | 201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