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깨어진 옹기의 비유(예레미야 19:1-12) 본문

비유의 복음

깨어진 옹기의 비유(예레미야 19:1-12)

유앙겔리온 2019. 4. 4. 19:55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깨어진 옹기(오지병)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인 예레야아에게 찾아오셔서 토기장의 집에 가서 '진흙으로 만든 옹기(호리병)'을 사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목이 좁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와 같은 옹기(오지병)는 한번 깨어지면 다시 수정하거나 고쳐쓸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려고 하는 교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은 깨진 사기 그릇처럼 그를 다시 수리할 수 없을 만큼 굳게 되어버린 상태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우리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깨어진 병과 같다고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1. 초대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초청된 사람들은 1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들은 정치, 사회적 지도자들과 종교적지도자들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이들 유대지도자들이 회개한다면 유대와 예루살렘의 파멸을 유예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 초대된 장소
  흰놈의 아들 골짜기입니다.
  2절 말씀에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나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원래 예루살렘 성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모아서 불태우는 쓰레기 하치장이며 소각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골짜기에서는 언제나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와 냄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흰놈의 골짜기는 살육의 골짜기로 지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곳을 죄와 형벌의 장소, 혹은  지옥의 장소로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3. 이스라엘백성의 죄악에 대해서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버린 죄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아끼면 안됩니다. 그러나 다 버려도 결코 버려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입니다.


    2) 거룩한 곳을 부정케 한 죄입니다.
4절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했습니다.
더렵히지 않아야 할 곳, 신성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더렵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곳, 거룩한 곳을 더렵히지 않아야 합니다. 성소, 그리고 마음의 성소, 구별된 관계 이런 것은 더렵히면 안됩니다. 더렵히면 반드시 보응이 따라오게 됩니다.


    3)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계속해서 4절에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라고 했으며 5절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세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도 그들은 새로운 유행을 좋아하였습니다. 새 유행 종교는 그들의 기호에 맞았습니다.

    4) 무죄한 피를 흘린 죄입니다.
4절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라고 했습니다.


  4. 깨뜨린 오지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산교육을 시키시기를 즐겨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는 오지병을 사서 백성들의 어른들과 제사장들의 어른들을 흰놈의 골짜기로 인도하여서 그곳에서 오지병을 깨뜨리게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시행을 하였습니다.


  토기장의 손에서 깨뜨려 다시 만들 수 있는 그릇이 있고 다시 만들 수 없는 그릇이 있습니다. 다시 만들 수 있는 그릇은 불속에 집어넣지 않는 진흙으로 된 그릇입니다. 


  진흙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빚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재료입니다. 그리고 녹노 위에 올려진 그릇은 언제나 짖이겨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오지병은 이미 만들어진 굳은 그릇입니다. 


  성도 여러분 수리가 가능한 것이 얼마나 복이 있는 지 모릅니다.
  늘 여러분들은 수리가 가능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칠 수 있을 때가 있고 고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굳어진 후에는 바로잡지 못합니다.
고칠생각을 버린 상태가 되면 이미 버려진 것입니다. 


  인생은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들어져가고 있는 그릇입니다. 언제나 수선이 가능한 그릇입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논할 수 있으려면 임종이 가까워져야만 합니다. 그때가서야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진행중일 수만은 없습니다. 언제나 과정중에 있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끝날이 반드시 옵니다.


  마지막 완성이 되어지면 정말 필요치 않는 것은 흰놈의 골짜기와 같은 곳에서 깨뜨려짐을 당하게 되는데 다시는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살려서 하나님쓰시는 구별된 그릇들이 되어야 할 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