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터진 웅덩이의 비유(예레미야 2:9-13)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터진웅덩이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판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웅덩이란 물을 모아놓거나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거나 바위를 뚫어 만든 인공 물 저장소입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흔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흔적은 바로 물을 저장하는 웅덩이들입니다. 물이 없이는 인류가 살수 없고 인류의 문화가 발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류는 물을 저축하기 위하여 크고 깊은 웅덩이들을 파왔던 것입니다. 중동지방은 가뭄이 심하여 비가 올 때면 빗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큰 웅덩이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웅덩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브에르'는 빗물을 모아놓는 물 저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웅덩이는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긴 건조기간에 비하여 우기는 아주 짧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연 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이 늘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겨울 우기동안 내리는 빗물을 모으는 물 저장소를 집집마다 만들었던 것입니다. 주로 웅덩이는 바닥이 천연석으로 된 장소나 혹은 바위를 뚫고 깍아서 웅덩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바위 웅덩이에 여러 겹의 회벽으로 방수 칠을 하여 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튼튼하게 만든 웅덩이 물 저장소라도 어딘가에 금이 가고 틈새가 생겨 모아둔 물이 빠져나가는 터진 웅덩이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들의 생활속에서 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일을 비유의 재료로 삼아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닌 줄 생각합니다.
터진 항아리, 터진 논두렁, 터진 전대나 주머니 때문에 낭패를 본 그런 경험을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모두 겪었을 것입니다. 그 허망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무엇을 넣을 때면 터진 데가 없는가 먼저 살펴보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동화인 '신데렐라'의 이야기에도 보면 못된 새엄마가 신데렐라에게 깨진 항아리에 물을 담아놓으라고 하고서는 자기는 다른 딸들과 파티를 즐기려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깨진항아리에 물을 채운들 물이 저축될리 만무합니다. 다행히 두꺼비가 깨진항아리의 구멍을 메꾸어주어서 문제는 해결됩니다.
동화 신데렐라와 비슷한 콩쥐 팥쥐 이야기에도 배씨라는 계모와 그의 딸 팥쥐가 콩쥐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하루는 콩쥐의 외가집에서 잔치가 있으니 꼭 오라는 기별이 콩쥐네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고약한 계모와 팥쥐는 예쁜 옷을 차려 입고 잔치집에 가면서 콩쥐에게는 큰항아리에 물을 가득채우고, 벼 석섬을 다찧고, 짜던 배를 다 짜고 오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그런데 착하디 착한 콩쥐는 항아리에 물을 길러다 부었지만 결코 항아리가 차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계모와 팥쥐가 항아리에 구멍을 미리 뚫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콩쥐와 팥쥐 이야기에서는 거북이가 그 구멍을 막아주어 물을 채우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웅덩이는 터지지 않아야 쓸모가 있습니다. 물항아리는 터져버린면 애써 모은 물이 다 흘러버려 헛된수고가 되고 마는 거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극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처럼 "터진 웅덩이의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어떤 웅덩이를 터진 웅덩이라고 했습니까?
불신앙의 웅덩이가 터진 웅덩이 입니다. 오늘 말씀에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고 였습니다. 하나님을 배격하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불신앙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3:5-6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하신 말씀같이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없이 물질로 만 살려고 하는 것은 물질의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지식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은 지식의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사업을 붙들고 살려는 사람은 사업의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은 권세의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식을 더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자식의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만들어 놓은 모든 재산이이나 사업이나 지식이나 권세나 자식이나 그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터진 웅덩이에 불과한 것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생수의 근원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노력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유지해 보려고 최선을 다하며 애쓰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주변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훌륭한 인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여도,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이 스스로 마련한 터진 웅덩이일 뿐입니다
인간이 웅덩이를 팔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웅덩이에 물을 고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터진 웅덩이는 물이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없어지는 지도 모르게 조끔씩 어디론가 세어나가 버리려서 나중에는 마른 웅덩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풍요와 즐거움을 누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만족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불신앙의 마음은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이 마음 속에 평안을 저축하고자 하나 평안은 온데간데 없이 다 빠져나가버리고 근심과 염려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물질은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저축해보려고 웅덩이를 파보지만 터진웅덩이에 아무리 물질을 부어보지만 결국은 헛된 수고를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식도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망한 많은 나라들과 문화들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살았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파 놓은 모든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인줄로 이 시간을 통해서 깨닫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터진 웅덩이를 무엇으로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밑 터진 경제, 정치, 문화, 교육, 가정, 민족, 종교....
이 모든 구멍을 무엇으로 막을 수가 있으며 생수를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파스칼은 인생의 마음에 뚫린 구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메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불신앙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자식과 우리의 모든 것에 뚫여 있는 구멍을 막아주실 수 있는 구세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의 건강의 웅덩이 에도 생수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경제의 웅덩이에도, 가정의 웅덩이에도 사업의 웅덩이에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웅덩이에도 생수가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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