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어버린 은의 비유(예레미야 6:27~30) 본문

비유의 복음

내어버린 은의 비유(예레미야 6:27~30)

유앙겔리온 2019. 4. 4. 19:48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내어버린 은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을 '내어버린 은'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과 예루살렘을 "은'과 같은 보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만큼 귀한 존재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신부로, 자녀로 기업으로 삼으시고 귀히 여기시고 보십니다.
 
  인간사회에서 금과 은 그리고 금속은 귀한 보화인 것입니다.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쓰이는 곳이 많기 때문에 귀중히 여기고 잘 보관을 합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금은보화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6장 30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보화와 같이 아끼시는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보화와 같이 여기던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1. 은을 왜 내어버리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려면 은을 만들어내는 작업공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은을 정제할 때에 납을 섞어서 풀무에 달구면 은의 찌꺼기는 납과 함께 밑으로 내려앉고 순전한 은은 위로 뜨게 됨으로 좋은 은을 선별하해 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광석에 포함된 은이 질이 나쁜 경우는 아무리 풀무를 불어도 은의 찌꺼기가 분리되지 않고 납만 살라진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귀한 은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내어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은을 제련하는 방법이고 과정입니다.
  
  2. 또 한 가지 은을 내어버리는 경우는 어떤 경우이겠습니까?
  은광을 발견하고 은을 캐게 되었는데 은이 너무 소량이어서 경제적인 가치가 없을 떄 그 은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또 다른 한 가지는 '은'이 어떤 경우 은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화학적인 반응으로 은이 변했다거나 전혀 은으로써는 사용할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을 경우, 버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인 유대백성을 오늘 본문 말씀은 이처럼 아무리 단련하고 연단하고 힘쓰고 애썼으나 허물과 죄악의 찌꺼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분리되지 않아서 버려야 할 은과 같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로써 은을 정제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불순물과 찌꺼기뿐이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량품 은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의 가치가 없는 은이었던 것입니다. 보화는 항상 보화의 주인에게 보화로서의 가치를 유지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보화의 주인이 그것을 귀히 여기고 보관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보화가 보화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고 하면 그 주인은 그 보화를 보화로 인정치 않을 것이고 보관할 가지가 없기 때문에 던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소금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짠맛입니다. 짠맛이 있어야 소금이 이곳 저곳에 귀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짠 맛을 잃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길바닥에 버려저서 사람도 짐승도 짓밟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열매입니다" 열매 맺지 못한 가지, 썩은 가지는 잘라내버리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과 같은 예루살렘이나 그 백성을 단번에 버리시겠다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은과 같이 연단을 하고 제련을 하고 많은 공정과 과정을 거쳐서 순전한 은으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노력을 기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순전하고 깨끗한 은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란으로 연단하실 때 그 연단을 잘 받아 회개하며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려진 은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을 예고 하여 주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은은 은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금속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제련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련해도 연단해도 찌꺼기 빠지지 않고 여전히 불량한 금속으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짓고 실수를 하고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화나면 못할 말도 하게 되고 정상적인 모습을 잃고 비정상적인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련하고 단련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환난을 주십니다. 그럴 때 마땅히  환란을 경히 여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을 경히 듣고 넘겨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람의 몸의 건강도 그렇고 기계도 그렇습니다. 망가지려고 하면 경고음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소홀리 듣기 때문에 큰 일을 만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징조가 있습니다. 징조를 경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란이나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연단이며 훈련이시며 권고하심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소홀리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것으로 연단하시든지 그 연단을 통하여 회개하고 정결케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순금과 같고 순은과 같은 신앙을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이 여지없이 온갖 세상적인 것으로 인해서 더렵혀져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1:22에 보면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이 찌꺼기가 되고 포도주에 물이 섞여서 마실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그 앞날에 되어질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버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단 받으실 때마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마시고 더욱더 순수해지고 깨끗해지고 온전케 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믿음의 사람들이 "버림받은 보화'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한광교회가 그리고 우리 민족교회가 '버림받은 은'과 같이 되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