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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야기

까다롭지 않는 차

유앙겔리온 2018. 7. 7. 15:46

  차를 대하고 다루는 경우 대개 까칠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다도란게 그렇고, 다구란게 그렇습니다. 차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차를 공급하는 이들이 그렇고, 차를 펼쳐 나누는 차인들이 그렇고, 차를 위한 갖가지 차도구를 생산하는 이들과 그것을 공급하는 이들이 그렇고 차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냥 그렇게 까칠해도 되고, 심지어는 까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차를 마셔보면 차를 우려 적정한 맛을 제대로 내는게 그리 만만치 않는 일입니다. 보관도 그렇습니다. 습도, 온도, 바람, 채광, 냄세 등에 민감해서 어쩌다 잘못 보관하거나 마셔야 할 기간을 넘기면 비싼차를 버려야 하기도 합니다. 차도구들도 대부분 고가이고 조금만 부주의해도 깨지기 싶고 망가지기 쉽습니다. 내게도 뚜껑만 깨진 다관들이 수개에 이르고 버리지 못한 망가진 차도구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차에 취한다는게 몽롱해지는 것이 아니라 맑아져서 혼탁함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할 때 차는 정말 까다로울 수 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싶습니다. 뿐만아니라 차의 기원이 성직자들의 수도생활에서 잠과 잡념들을 쫓아내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가장 빠르게 신체에 스며들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음료라고 생각하면 까답롭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모든 당위성을 들먹여 이야기를 늘어논다고 할지라도 까칠함은 결코 찻자리에 끼어들어 자리잡아서는 안될 정서입니다. 옛날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까칠해만 가는 오늘의 세상을 살면서 위로 삼아 마시는 차가 더욱 사람을 까칠하게 한다면 굳이 차 마실 이유가 뭐겠나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까칠하지 않는 차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차를 찾았습니다. 까칠한 것과는 거리가 먼 좀 무심하다 싶을 만큼 무딘 차가 있습니다. 진하면 물을 더하면 되고, 차 맛이 연하면 진한 차 몇방울을 더 떨어뜨리면 됩니다. 뜨거우면 식히면 되고 식었으면 덮히면 되는 차가 있습니다. 맛이 있으면 없어질 때까지 다 마시면 되고, 맛이 없으면 그냥 아무데나 던저놓았다가 세월이 좀 흘렀지 싶으면 다시 꺼내서 마시면 되는 차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차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승늉보다 더 친근한 차, 그 차가 바로 내가 오랜 세월 마셔오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차입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자세를 흐트려뜨려도 괜찮은 차, 많이 마실수록 자유자가 되는 차, 나에게는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차입니다. 그리고 차를 다리고 우리고 마시는데 쓰여지는 모든 차도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까칠하지 않는, 다소 무디고 무심함이 있는 그런 도구들이 쓰기에 편하고 좋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까다로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지간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무덤덤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래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시는 차가 좋고 아마도 내가 세월을 마감하는 그 자리에도 이 까다롭지 않는 차와 차도구들이 나와 함께 있게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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