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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야기

차역취인(茶亦醉人)

유앙겔리온 2010. 5. 13. 21:46

 

  어느 동료의 집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차판에 “茶亦醉人”이란 말이 서각되어 있었습니다. 한자 네 자가 두 줄로 기록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문에 능통하지 못한 나로서는 처음에 이것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까 그리고 그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곳에 같이 차를 마시는 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모두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이 글이 “茶亦醉人何必酒 書能香吾不須花(차역취인하필주 서능향오불수화)”이란 글귀인 것을 알아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검색 기능 때문입니다. 내용인즉 “차 또한 사람을 취하게 하니 어찌 술이 필요하며, 책이 능히 나를 취하게 하니 꽃이 필요치 않다”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귀는 꼭 나를 위한 글귀인것만 같아서 순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하고 꽃에 취하는 것을 최고의 취함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차에 취하고 책에 취하여 사는 삶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취한다’는 말은 젖어들고 빨려들고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취한다는 말은 “끌리어 마음이 열리다”는 의미입니다. 차에 취한다는 말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음이 열리고, 열림으로 말미암은 평화와 즐거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차의 취함일 것입니다.

 

  음차십덕(飮茶十德)을 보면 以茶散鬱氣, 이차산울기(차는 우울함을 흩어지게 하고), 以茶驅睡氣, 이차구수기(차는 졸음을 쫓고), 以茶養生氣, 이차양생기(차는 생기를 기르고), 以茶除病氣, 이차제병기(차는 병이 기운을 제거하고), 以茶利禮仁, 이차이예인(차는 예의와 인을 이롭게 하고), 利茶表敬義, 이차표경의(차는 경의를 표하게 하고), 利茶嘗滋味, 이차상자미(차는 맛을 음미하게 하고), 利茶養身體, 이차양신체(차는 신체를 기르고), 以茶可行道, 이차가행도(차는 가히 도를 행하게 하고), 以茶可雅志, 이차가아지(차는 가히 뜻을 우아하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롬13:13, 고전5:11, 고전6:10, 갈 5:21, 엡5:18, 딛2:3)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술을 권하는 사회는 망하고 차를 권하는 사회는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차에 취하고, 책에 취하고 영에 취하여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 권하고 책 권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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