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밀알의 비유(요 12:20~26) 본문
밀알의 비유
요한복음 12:20-26
밀알의 비유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밀알에 대한 이러한 상식적인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태여 다 아는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새삼스럽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밀알의 이야기를 통하여 복음을 말씀하시고자 하며 자신의 사명과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밀알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비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밀알의 비유 속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과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친히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공생애를 끝내고 인류 구속역사의 정점인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고, 이로써 인류를 구원하고 영생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한 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와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시간 우리 모두 한 알의 밀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배워서 가장 값지고 생명이 풍성한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밀알'은 생명의 알겡이 입니다. 이 생명의 알겡이 속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이 죽을 때 거기서 100-120개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5년 후면 100억개가 되고 약 1만7천 가마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밀알을 그대로 두면 밀알 하나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속에는 5,000년 전의 밀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밀은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알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은 한 알이 아닙니다. 수많은 열매를 맺고 그 생명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러한 밀알의 교훈은 평범한 자연법칙으로서 이는 생명의 법칙이요 창조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운 대로 한 알의 밀은 형체를 가진 배젖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의 핵인 배아로 되어 있습니다. 배아는 일명 씨눈이라고 하며 이것이 밀의 참 생명입니다. 이 밀알의 생명인 배아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6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적당한 깊이의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밀알은 뿌리를 내려 물과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그러면 싹이 나고, 밀알의 양분이 분해됩니다. 이제 싹이 스스로 자립적으로 자라려면 양분이 싹으로 이동되고 껍질만 남습니다. 밀알의 양분이 분해되어 싹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썩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썩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많은 생명을 얻고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 뿐입니다. 여섯째, 싹은 햇빛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잎이 나와 호흡하며 자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밀알의 생명인 배아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까지는 배젖이 썩어 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배젖이 100% 완전히 썩어야 배아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합니다. 만일 배젖이 완전히 썩지 않고 90%만 썩으면 밀알은 골아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싹은 자라다가 영양분이 없어져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한 알의 밀이 완전한 자기 분해, 자기 희생이 없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유일한 생명의 법칙입니다.
밀알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에 떨어져야 하고 그 딱딱한 껍질이 완전히 썩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밀알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자꾸만 하늘로 올라갈려고만 하면 무슨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겠습니까? 땅에 떨어져 밟히고 썩어져야 싹이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밀알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예수께서 밀알이 땅에 떨어짐과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 앞에 모든 것들이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에서 이것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를 원한다면 밀알의 비유에서와 같이 땅에 떨어져야 하고 그리고 겉이 썩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결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한 가지 사명을 위해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한 곳에 얽매이기를 싫어하고 또 자기를 희생하기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희생없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을까 연구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길은 없습니다. 희생없이 많은 열매 맺기를 원하는 사람은 씨도 뿌리지 않고 많은 수확을 고대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죽지 않으면 10년이 지나도 한 알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그 한 알 마저 시간이 지나면 골아 생명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도 변개시킬 수 없는 유일한 생명의 법칙입니다.
오늘에 낮아짐이 없이, 오늘의 눈물이 없이, 오늘의 헌신이 없이 내일의 영광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반드시 희생위에서 꽃이 피는 것입니다. 수고 위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비만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이기도 하지만 비만 자체가 질병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외국 사람들을 보면 절반은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 것같습니다. 다리 하나가 우리의 몸통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비만을 이기는 길은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비만은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수고 오늘의 죽음은 미래를 윤택하게 하고 미래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자기 안일 자기 사랑 자기 자랑에 빠지면 미래는 암담한 것입니다. 지금 육체가 원하는대로 해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육체의 욕망대로만 끌러다니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썩지 않는 곳에서는 열매가 맺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알의 밀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때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밀알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의 피위에 세워졌고,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도 많은 분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통해서만 얻게 됩니다. 이것은 파스테르가 발견한 유일한 생명의 법칙이요, 자연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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