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빛의 비유(요 8:12~20) 본문

비유의 복음

빛의 비유(요 8:12~20)

유앙겔리온 2013. 2. 28. 21:27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빛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하시면서 자신을 "빛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이해, 자기 정체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생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기를 바라며,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어두운 세상의 빛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빛은 우리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줍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빛이 없으면 생활에 큰 문제가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영적으로 어두운 것입니다. 세상의 속성은 어둠에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영적 인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이 어둠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영적인 어두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이 어두움의 원조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곳에 죄의 어두움, 근심과 시기 질투의 어두움, 각색 질병과 고통의 어두움, 죽음의 어두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어두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밝힐 빛으로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12절).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두번째  <나는 무엇이다> (애고 에이미)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무엇이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또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는 위대한 자기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헬라어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습니다.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나 홀로 빛이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불기둥의 빛은  하나님 자신의 顯現, 즉 나타나심이요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세상에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27:1). 신약성경에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요일1:5)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태양이 1초에 발산하는 태양 에너지를 가지고 60억 인구가 100년을 쓰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태양이 1분도 아니고 1초입니다. 1초에 쏟아내놓은 빛 에너지를 가지고도 60억의 인구가 100년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이용할 만한 지식과 과학과 경험이 부족해서 에너지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으며 화석 에너지 즉 석유나 가스나 석탄이 부족하다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면 무궁한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렇게까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도 이 거대한 온 우주의 온도 조절을 태양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양계에 비유하면 태양과도 같습니다. 예수 한 분이면 온 인류가 구원을 받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여기저기 구원을 찾아서 헤메이며 걱정을 하는 지경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한분이면 족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것은 뜨겁습니다. 차지를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마치 광야의 성막에서 영광스러운 빛이 주의 임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말씀 (LOGOS)이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만졌던 것입니다.

 

  3. 빛이 왔으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영적인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4.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따르면 누구든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도 생명의 빛이 비췰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셨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있는 동리가 감추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그를 따르면 우리도 빛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핵심 개념들은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 믿는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곧 예수를 믿고자 하는 자는 따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른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 바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기를 원하고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기를 원하는 이가 바로 예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고자 합니다. 그가 고후5:15절에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어둠의 자녀들이 아니라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이 빛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갈수록 흑암 세력은 젊은이들로부터 기회를 빼앗아가고,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건강문제와 영적 문제, 내세문제를 가지고 장악하고 있습니다.   
  빛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태양은 1초에 쏟아낸 빛 에너지로 60억인구가 100년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로 살기만 하면 얼마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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