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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의 비유(요 10:11~18) 본문

비유의 복음

선한목자의 비유(요 10:11~18)

유앙겔리온 2013. 8. 9. 19:06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목자에 비유했습니다. 유목문화를 이루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목자와 양들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는 대단히 실재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두번이나 말씀 하셨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입니다. 목자없는 양은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보호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실재적으로 집이나 마을에서 먼 광야로 나가서 양들을 먹이던 목자가 갑자기 죽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병으로 죽든지 강도를 만나든지 하면 목자를 잃은 양들이 생기게 되고 양들은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뿔뿔히 흩어지고 마는 사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없는 목자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목자는 제 양을 거느릴 때까지는 목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이며 생명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목과 본문에 충실하기 위해서 목자에 대한 것만 함께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목자는 양을 인도해서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그리고 그 양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목자를 영어로는 세파드(shepherd)라고 합니다. 그것은 양을 지키는 개라는 데에서 유래한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이라고 해서 다 선한 목자가 아닌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냥 목자라 하시지 않으시고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신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변하지 않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양들을 사랑하고 친구가 되어주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을 감수합니다.

 

  선한 목자는 문으로 정당하게 들어갑니다. 선한 목자는 제 양을 만나러 들어가면서 정당한 길과 정당한 문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도적이나 강도는 뒷문이나 담을 넘습니다. 
  항상 정당성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항상 정당성을 생각하고 정당하게 양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도적과 강도는 양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혹시 알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외면을 합니다. 살려달라는 소리에도 인정을 베풀지 아니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좋다 또는 선하는 말을 듣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자기 먼저 챙기고 자기 이익 먼저 따지고 자기만 아는 그런 사람을 좋다거나 선하다고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자기 희생이 있을 때에만이 이 말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서 미리 예비하시고 그리고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신 분이십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잘 인도합니다.
양들의 성격을 알아서 양들에 적합한 훈련 하고 가르치고 양식이 있는 곳으로 생명수 샘물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들의 인도자인 것입니다.

 

  선한목자는 자원적이고 자발적인 목자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양들을 몰고 나가고 들어오는 그런 사람은 선한목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양들을 사랑해서 양들을 아끼기 때문에 돌보고 가르치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그리고 양들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스스로 버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요구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한 것입니다.

 

  주님은 선하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의 표상이십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자 가운데서 이끄어내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시어 우리의 참된 목자가 되어 계신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자장이 되신다고 말했습니다. 벧전 5:2-4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베드로는 모든 목자들이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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