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양의 문의 비유(요 10:1~10)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양의 문의 비유"입니다. 역시 이 비유도 "나는 ~이다"의 구조와 형태를 띠고 있는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에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소재는 멀리서 찾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이 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자연의 이치와 생활환경속에서 그 소재를 찾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팔래스틴 지역이 거의 사막 땅인데 갈리리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가 흐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초목이 울창해서 양들을 치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양치기가 성행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요셉이 양의 문을 만드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자신도 그 양의 문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문은 모든 건축물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무리 견고하 튼튼 집도 문이 없으면 건축물로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출입할 수 있어야 그 건축물은 제 구실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문들을 드나들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문은 그 집을 이용하는 사람의 출입을 돕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과 원치 않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출입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에 비유를 했겠습니까?
양의 문은 왜 있습니까? 양의 문은 양들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성서시대의 양의 우리는 동굴이나 돌로 쌓은 담이나 나무가지로 얶어만든 울타리로 둘러 쌓인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우리에는 단 하나의 출입문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그 문을 통해 양들을 출입시켰습니다. 양은 이 문을 통하여 들어가고 나가면서 쉬기도 하고 풀을 뜯기도 하며 마실물을 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밤에 양들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출입문을 가로 막고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목자가 그렇게 문을 지키고 있는 한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기서 목자가 양의 문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짐을 봅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양의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양의 문은 들어가야할 것과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을 걸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문에 의해서 걸려져서 양들은 일단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사나운 이리나 사자로부터 안전을 얻게 되고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양들은 자기 우리에 있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야 보호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의 이리의 문이나 사자의 문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양의 문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라고 했는데 이 구원이란 본래 위험으로 보호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 그리고 사탄과 모든 유혹으로부터 보호하시겠다는 뜻으로 "내가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과 우리 인생들의 구원의 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문은 때때로 번거롭고 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문을 없애버리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양들인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양의 문을 통하여 나오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양들은 양의 문을 통하여 나오면 꼴을 뜯는 배부름과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혹시 문이 고장나거나 문을 열어줄 양치기가 죽거나 아파서 양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면 양들은 모두 굶어죽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개를 묶어놓고 여행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의 문으로 나오지 않고 다른 곳을 통하여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길을 잃을 위험성에 빠지게 됩니다. 꼴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나운 짐승들의 밥이 되어버릴 운명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양의 문은 양이 꼴을 얻기 위해서 나와야 할 통로인 것입니다.
꼭 통로가 아닌 문으로 나오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도 보면 목자가 아닌 도적은 문으로 통과하지 하니한다고 했습니다.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나쁜 양들이 문이 아닌 다른 울타리리를 뚫고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는 강도도 나쁜 축이지만 문이 아닌 울타리를 돌파하고 나가는 양도 나쁜 축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양은 양의 문 앞에서 어떠해야 합니까?
1) 양은 양의 문이 되는 목자의 음성을 들어(hear)야 합니다.
2) 양은 그의 음성을 알아(know)야 합니다.
3) 양은 그의 음성을 따라(follow)야 합니다. 들어가라하면 들어가고 나오라 하면 나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않으면 문이 오히려 양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문이다 하신 것은 심판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문은 열릴 사람에게 열리며 열려서는 안될 사람에게 닫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에게 집 주인이나 도적에게 모두에게 열리는 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좋은 문이 될 수가 없고 안전한 문이 될 수가 없고 구원의 문이 도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의문은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의 예수의 양된 자격을 가진자가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은 양에 의해서 열고 닫히는 것이 아니라 목자에 의해서 열고 닫쳐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을 위한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이 문들 중에는 들어가도 좋을 문들이 있는가 하면 들어가면은 인생을 망치는 문들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서에서도 좁은 문과 넓은 문 생명의 문과 멸망의 문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은 양들의 생명의 문이며 구원의 문이며 안식의 문인 것입니다.
양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문은 밤이 깊어지고 모든 양들이 다 들어왔을 시간이 되면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양들은 문이 열려 있을 때에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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