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길의 비유(요 14:1~6) 본문

비유의 복음

길의 비유(요 14:1~6)

유앙겔리온 2013. 12. 7. 18:50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인류는 줄곧 좋은 길, 안전하고 빠른 길을 추구하여 왔습니다. 길의 역사는 곧 인류 문영의 발전 역사입니다. 길이 좋아지지 않고는 결코 인간생활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대로마제국은 로마로 향하는 부채꼴 모양의 도로와 함께 건설되었습니다. 여러분, 길을 내는 일에는 반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만 반대하는 그들도 사실은 길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히려 길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 길을 이용할 사람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길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길이 나면 이전과 달리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길이 나야 생활도 편리하고 땅값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없는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의 경제생활은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서해대교와 그 길이 없는 서해안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교량이 없는 섬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생활의 불편이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은 도로건설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역시 신앙의 길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합니다. 선교사들과 목사님들과 선배신앙인들이 접촉과 연결을 가능케 하신 분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국에 믿음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피를 흘렸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내게 믿음의 길을 열어준 이들에게 감사할줄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길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로공사를 할 때보면 약각 미숙하고 정책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일례로 한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미국의 도로공사와 한국의 도로공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도로공사를 중앙에서부터 하지를 않고 갓길에서부터 공사를 합니다. 그래서 차근 차근 안쪽으로 도로를 만들어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도로 중앙에는 잔듸밭이나 공터로 남겨둡니다. 그래서 교통량이 많아지면 중앙에 남겨놓은 땅을 이용해서 그곳에 도로를 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로중앙에서부터 도로공사를 하여 1차선 2차선 3차선 그리고 갓길을 만들어 도로를 완전하게 마감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도로 가에 상가가 들어서고 편의시설이나 공장이나 주택이 들어섭니다. 교통량이 많아서 도로를 넓힐려고 하면 결국 상가나 편의시설, 공장이나 주택들을 뜯어내고 도로 공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보상 비용에 도로건설비까지 들어가니까 결코 도로 확장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반복하다보니 국가적인 손실도 그만큼 큰 것입니다.
  아뭍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할려면 도로가 거미줄처럼 놓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이 이동하려고 할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야 하고 비용이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좋은 길, 거룩한 길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사 35:8)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예언에 따라서 좋은 길과 거룩한 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좋은 길, 거룩한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 없느니라(6)"하신 것입니다. 길은 목적지로 가는 통로입니다. 전기는 전기줄을 따라 흐르고 수돗물은 수도관을 통하여 흘러가게 됩니다. 구원이나 생명이나 영생은 아무 길을 가도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길을 가야 얻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연결케하는 길이요 통로이십니다.

 

  이스람교를 믿던 터키 사람이 성경과 예수교서적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사에게 들켜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문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게 질문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질문인데?"
  "일전에 내가 어디를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두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길을 물어 본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보아야지"
  "그런줄 알면서 왜 당신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하십니까?"
  "아니, 이 사람아 누가 죽은 사람보고 길을 물어보라고 했는가?"
  "당신들이 믿으라고 하는 마호메트는 죽은 사람이요.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예수는 산 예수입니다. 어찌 죽은 마호메트를 의지하겠습니까? 길 되신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 뻔한 노릇인데 인도자를 찾아가는 나를 왜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교사는 아무 대답도 못하다가 한 참 후에 "네 마음대로 하라"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바른 길로 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길이 되어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길일지라도 바른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길이 아닌데도 가려는 사람들과 사도 즉 바르지 못한 사악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비리와 범죄가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바른 믿음생활은 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도를 걸으시기를 바랍니다.

 

  길에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길을 잘못가거나 가던 길을 놓치는 일이 없게 하도록 세워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도 이와같은 이정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시고 그리고 성경은 그 길을 갈 수있도록 인도하는 이정표인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길이 나 있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인류역사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길은 어려 개의 길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길 말고는 또다른 길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요통치지 말고 믿음에 도리를 굳게 지켜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길이 있으려니 생각해서 방황하는 성도들이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허비요 인생 낭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 길을 가장 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미래가 열리고, 영원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십니다. 이 길을 따라 가야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