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 15:1~10)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른 자들과 자신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기를 즐기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에는 주로 그 관계성을 "나는 ....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예로부터 팔레스틴에서 가장 귀중한 작목중의 하나로 성경 속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나무이며 열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싶이 포도나무는 나무 자체로서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나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땔나무로도 적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열매인 포도는 우리 삶에 있어서 유익하고, 사람들이 즐겨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이 포도나무를 통해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가 그 가지라는 비유'는 이 관계가 보통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생명적 관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의 연결은 생의 유지와 풍성을 가리키며, 이둘의 분리는 결국 생명의 소멸과 결국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가지가 있어야 그 잎을 통하여 광합성 작용을 하게 되고 나무가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나무 줄기에 의해서 생명의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그가지는 말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결합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떨어지면 다른 것은 고사하고 생명 자체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이처럼 생명의 관계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주님과 자신을 이처럼 생명의 관계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뗄레야 뗄 수 없는,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되는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필요하시며 우리는 주님이 필요한 그러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이 관계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나빠지면 모든 것이 나빠지고 이 관계가 좋아지면 모든 관계가 좋아 집니다.
예수과 형통하면 모든 것과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지체는 아무 쓸모가 없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와 그리스도는 이러한 생명의 관계에 있습니다. 가지가 아무리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나무줄기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능력을 가지고 있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에게서 떨어져나가면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한 생명의 관계를 상실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참 포도나무라는 표현은 거짓 포도나무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재적으로 나무자체가 좋지 못한 종자여서 아무리 가지가 열과 성을 다해서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좋지 못한 열매를 맺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열과 성을 더하면 할 수록 더욱 열매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비유한다고하면 잡종의 포도나무 들포도나무가 아니라 좋은 포도나무라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포도나무가 좋은데 그가지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엇이든 구하면 필요한대로 다 공급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자기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열매 맺는 삶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공급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구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것이어서 구하는 양분을 어찌 포도나무가 그것을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은사를 구하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할일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열매맺지 아니한 가지마다 찍어 불에던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그 역할과 구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역할과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는 결국 역할을 잘 하는 것의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나무에 여러 가지가 있는 그 가지 중에 하나가 열매는 맺지 않고 영양분만 빨아들이면서 다른 가지의 열매까지 충실하지 못하게 한다면 틀림없이 그 가지를 잘라낼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이를 깨끗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지는 제 마음대로 놓여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농부이신 아버지의 관리와 심판과 결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일에 싫증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미 열매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자 하는 열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에 싫증을 느끼는 순간부터 모든 신앙적인 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이 포도가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연결된 가지같은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이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10)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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