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검과 잔의 비유(요 18:10~11)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검과 잔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 잡히시기 직전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그것은 "검과 잔"입니다. 그리고 이 검과 잔은 비유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서에서 "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로 옷을 팔아서 날카로운 검을 사라는 말씀의 의미가 아니라 곧 급박한 상황이 올 터이니 마음을 무장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무력적인 검을 휘두르는 분이 아니셨으며, 또한 제자들에게도 무력적인 검을 가지고 싸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검을 쓰는 무장훈련이나 군사훈련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말하는 검은 비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잔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잔이나 컵이나 그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사명, 몫, 고난 등등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검은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의 검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검은 말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애리하여 우리의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토마스선교사는 중국선교사로 왔다가 아내가 죽고 비장한 각오로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에 올라왔다가 외세를 배격하던 군인들에 의해서 셔먼호는 불타고 동승했던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을 뿌리고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토마스 선교사는 선교랄 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때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뿌린 성경에 의해서 평양에 구원얻는 자가 생겼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에서 성경을 많이 뿌렸는데 그 뿌린 성경을 여러 아이들이 주워갔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최치량이었고 당시 이 성경을 한 곳에 모으라고 했기 때문에 겁이나서 그때 책임자인 관리 박영식에게 책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들을 모아가지고 있던 평양 대동문을 지키던 관리 박영식은 그 책을 찢어서 자신의 집을 지을 때 벽과 천장들을 발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성경을 매일 읽고 구원을 받았고 나중에 그 집을 최치량이가 샀는데 그 최치량 역시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그 집은 선교의 센터 역할을 했고, 나중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널다리골 교회가 나중에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발생지인 장대헌교회의 전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의 검은 이런 것입니다. 말씀의 검에 마음을 배이면 구원을 받습니다. 홰개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하여 애리한 말씀의 칼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말씀의 검을 무디게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악한 마귀 사단과 세상을 향하여 애리하고 날선 말씀의 검을 사용해야 합니다.
2.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으로 무장 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수술하는 칼날과 같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질병과 우리의 인생의 불필요한 것을 도려내는 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였던 이기풍선교사를 여러분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평양에 마펫선교사가 선교를 했을 때 여전히 외국인과 기독교를 배척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평양군중들이 마펫일행에게 돌을 던지며 적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을 던진 열혈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 이기풍청년이었고 그가 던진 돌이 마펫선교사의 턱뼈를 부러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팻을 괴롭히고 깊은 번민에 빠져 있다가 잠든 이기풍을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기풍아 기풍아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너는 앞으로 내 증인이 될 사람이다"
꿈을 꾸고 난 이기풍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누구의 전도도 없이 홀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한국초기교회에 성령님께서 이런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3. 우리는 선한 행실의 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은 검과 같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찌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선한 행실을 가질 때 영혼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고전7:14에서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행실은 악한 마귀 사단으로 하여금 우리를 감당할 수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실의 검을 버리고 악행을 저지르게 될 때 벌떼처럼 악한 마귀사단은 달려들 것입니다. 송사하고 고발하고 공격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검은 바로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력적인 검이 아니라 평화의 검입니다. 물리적인 철로 만든 검이 아니라 영적인 검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폭력적인 검은 칼집에 꽂아야할 것입니다. 결코 폭력적인 방법은 성도의 방법이 아니며 교회의 방법이 아니며 기독교의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보니까 베드로는 칼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귀가 떨어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귀를 붙여주시며 "베드로야 이것까지 참으라(눅 22:51)"고 말씀하시면서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교훈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폭력적인 의미의 검인 것입니다.
다음은 잔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18:11에서 "검을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마실 잔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잔은 자신이 마셔야 할 잔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사명이며 의무이며,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이며 자신이 가야할 길입니다.
주님은 잔은 십자가의 잔이며 피흘림의 속죄의 잔이며 대신 죽으심의 속량의 잔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내가 당연히 마셔야 할 잔으로 이해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원망이나 하고 불평이나 하는 그런 신앙인이 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잔을 마땅히 마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잔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마실 잔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자신의 잔을 놓고 게셋마네 동산에서 기름을 짜듯이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피방울되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잔을 피하지 안고 마셨습니다.
잔을 피하면 칭찬도 없고, 자랑도 없고 면류관도 없습니다. 성공도 없고 성취도 없습니다.
잔을 피하지 않고 잔을 마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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