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비유(롬 5:12~21) 본문
오늘 저녁부터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을 지나 바울사도가 사용한 비유의 복음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사도의 비유의 복음 중에 첫번째로 함께 나늘 것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주인공인데 그 두 사람은 바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입니다. 첫째 아담은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이며, 둘째 아담은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이십니다.
이 비유와 주제에는 매우 중요한 "대표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몇일전에 17세 이하 여자축구선수들이 피파가 주관하는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승전에서 일본팀을 이기고 우승한 것이라서 더욱 온 국민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그들은 23명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나가서 경기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긴 것은 대한민국이 이긴 것이며 또한 우리 모든 국민들이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대한민국의 대표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입니다.
그들이 이기면 대한민국이 이긴 것입니다. 그들이 지면 대한민국이 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은 바로 온 인류의 대표인 것입니다. 저들이 지면 모든 인류가 지는 것이고 저들이 이기면 온 인류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담은 불손종과 불신앙으로 사단에게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을 끓고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사단에게 패한 이 한 사람, 아담의 역할은 모든 인류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로 모든 모태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죄와 사망을 안고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에게서 난 자는 욕망에 시달리게 되고 수고와 염려속에 살며 그 사는 날이 적은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과 불신앙은 무엇때문이었습니까?
'아담'은 에덴의 낙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받아 풍족하게 누렸지만 '만족한 감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탐욕'때문에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권리'를 다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육신의 요구대로 움직이고 육신의 좋은대로 하다가 결국은 세상에 인류에 원죄를 남겨놓은 인류의 대표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탐욕'으로 인한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탐욕'의 반대말은 '무욕'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욕심을 갖지 말아야지 하는 그것이 가장 큰 욕심입니다. '탐욕'의 반대말은 '만족'입니다. 눈높이를 낮추어, 만족하면 탐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첫아담의 후손으로 살고 그 첫 아담과 연합하고 사는 모든 사람은 결국 아담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첫아담과 같이 사는 것은 죄와 사망 가운데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없이 사는 삶이라는 것은 바로 첫 아담과 같이 사는 것이며 첫아담과 연합하여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탓하고만 살도록 하나님께서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끊임없이 아담의 후예들을 위하여 속죄의 길을 마련하시고 죄에서 자유를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속죄의 자유보다 죄의 종의 길을 더욱 더 사랑했고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두째 아담을 약속해 주셨고 그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는 모두가 죄에서 자유하고 구원을 얻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첫째 아담이 이세상에 죄와 죽음을 가지고 들어온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첫번째 아담은 장차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장차 오실자의 표상이 된 것은 첫째 아담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고 전체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것과 같이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인하여 온인류에게 구속의 영향을 주시며 전체인류의 운명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아담은 나뿐 쪽으로 바꾸어놓았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쪽으로 바꾸어놓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첫번째 아담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첫번째 아담은 여전히 죄와 사망과 불순종과 불신앙의 나쁜 영향을 줄 뿐입니다. 여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첫번째 아담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책임은 하와와 하나님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망의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차이점입니다.
첫째 아담으로부터 탈출하여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는 자들에게만 구원이 주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연합할 때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참사람'입니다. 참사랑속에서 '그리스도'는 이미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셨고, 감사함으로 '십자가의 일'을 순종하여 받아들이셨습니다. '만족한 감사'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하늘의 보좌에 오르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담형 인간'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형 인간'도 있습니다.
'아담형 인간'은 이미 주어진 것을 '만족한 감사'로 받지 못하고, 탐욕 때문에, 있는 것마저도 빼앗깁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것을 '만족한 감사'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형 인간'은 있는 것 위에 '더 받아' 점점 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어 천국으로 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아담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영향 아래서 아담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죄가 떠나지 않습니다. 지옥이 마련되어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인생처방전이며 인생 약방문인 것입니다.
'비유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접붙임 받은 감람나무(롬 11:13~24) (0) | 2014.05.06 |
---|---|
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롬 7:1~6) (0) | 2014.05.06 |
띠띠는 비유(요 21:18~23) (0) | 2013.12.14 |
검과 잔의 비유(요 18:10~11) (0) | 2013.12.14 |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 15:1~10) (0) | 201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