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접붙임 받은 감람나무(롬 11:13~24)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접붙임받은 감람나무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비유를 사용한 분은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사도는 그 자신 자신의 정체성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그를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 직을 충성스럽게 행하였지만 늘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의 불행과 불신앙을 생각하면서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그렇게 마음 아파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13)라고 하면서 자신이 받은 이방인의 사도의 직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려고 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오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으로 "가지 얼마가 꺽어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은즉(롬 11:17)"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주소이고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민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불신앙함으로 말미암아 꺾어져 나간 그 구원의 자리에 접붙임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접붙임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으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먼저 해소해야 하겠습니다.
원래 우리의 접붙이는 방법은 좋지 않는 나무를 잘라내고 그 곳에 좋은 가지를 가져다가 접을 붙이는 것이 상식이고 보통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감람나무의 접붙이는 방법은 좀 특수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유대사람들이 저들의 풍속에 의하여 감람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인데, 그 방법이란 좋은 감람나무가 있고, 그렇지 않는 야생 감람나무가 있을 때 이 좋지 않는 감람나무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는 그 가지를 잘라내서 좋은 줄기로 옮겨 접을 붙여서 그 뿌리와 가지로로부터 올라오는 진액을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접붙이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서시대의 성서의 땅에서 행하는 감람나무 접붙이는 방법이지 오늘 우리나라의 농부들이 행하는 접붙이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참 감람나무로 비유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돌감람나무는 이방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참감람나무로 세우시고 조성하시고 키우셨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을 맡기시고 이들을 통하여 세계만민을 구원하시고자하시는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뜻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까지도 저주의 십자가에 달아죽여버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의 참감람나무를 잘라내시고 돌감람나무를 접붙어서 돌감람나무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참감람나무를 꺽어버리고 그 꺽긴 자리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셨습니까?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꺽기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원래는 돌감나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그 뿌리에서 하나님께서 잘라다가 좋은 감람나무에 뿌리에다가 접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야생적인 기질을 버리고 참감람나무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흡수하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종자가 나쁜 감람나무의 뿌리가 잘려나가고 좋은 참감람나무 뿌리에 우리를 접붙여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접붙임을 밭을 가지는 일단 돌감나무의 줄기에서 완전히 끊어져야 합니다.
접붙임을 받을 나무가지는 원래의 뿌리에서 잘려져야 합니다. 그대로 붙어 있으면 접붙임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제 접붙임을 받아서 영적 새이스라엘이 되신 성도 여러분들은 옛뿌리를 끊어버리고 영적뿌리, 복음적 뿌리, 성서적 뿌리에다가 완전히 접붙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참감람나무에 붙어서 그로부터 진액을 받음으로서 접붙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접붙임에서 중요한 것은 접붙인 부분에 틈이 생기지 않토록 튼튼하게 붙들어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곳에 틈이 생기면 잘 붙지 않고 썩게 되며 결국은 시들고 병들어 접붙임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틈이 생기면 진액이 접붙인 가지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접붙임을 당한 가지는 언제나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래는 야생의 돌감나무였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가지도 잘라서 접붙였는데 하물며 접붙임당한 가지이겠느냐하는 것을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자고하거나 교만하거나 나태한 생각을 버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꺽기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19-21)
창감람나무의 원가지도 필요하면 아끼지 아니하시고 끊어버리십니다. 하물며 접붙여 놓은 돌감람나무 가지 정도이겠습니까? 마르거나 병들거나 열매맺지 못한다고하면 가차없이 자를 것이니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돌감람나무를 접붙여서 쓰신 하나님께서 잘라낸 참감람나무가지가 어지간히 쓸만하면 다시 접붙여 쓰시지 않겠느냐?하는 것이 바울 사도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와 같은 입장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주시는 이 경고의 말씀을 늘 마음과 생활에 되새겨서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겸손과 두려움으로 열매를 맺으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과 은혜들이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처음부터 있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하심으로 접붙임시켜 주심으로 누리게 된 특권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빚진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접붙임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접붙임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은혜인데 때로는 내가 마치 원래부터 참감람나무인양.. 스스로 진액을 내는 뿌리인양 자긍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잘려나온 옛 뿌리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접붙여진 줄기에 힘차게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늘 긴장하면서 접붙임 받은 가지 임을 명심하고 매일 내 삶을 정결케 하며 열매맺는 가지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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