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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롬 7:1~6) 본문

비유의 복음

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롬 7:1~6)

유앙겔리온 2014. 5. 6. 20:14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 백성들이 죄에서나 율법에서나 기타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으로부터 참으로 자유할 수 있는 길과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길과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습니다만 2000년 전에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결혼이었습니다. 지금의 부부관계처럼 자유스러운 관계가 아니라 예속의 관계였습니다. 그 당시는 남편만이 이혼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혼한 권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단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모든 것이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물질적으로도 매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은 법으로 매이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남자나 여자는 누구에게 매여 있는 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면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아내는 남편에게 매인 몸입니다. 어디 아내 뿐이겠습니까? 남편도 아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 아내에게 매인바가 되는 것입니다. 

  매이기 싫으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은 서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이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깨트리고 서로에게 매이지 않겠다고 하고 자유부인 혹은 자유 남편이 되어서 홀로 행동을 한다거나 다른 만남, 다른 사랑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세상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매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결혼은 서로에게 매이는 것인데 매이기를 싫어하면 결국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손가정은 결국 자녀들에게 심각한 정신인 장애를 가져다구고 이것은 그 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가정은 중요하고 가정의 중심인 부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봅시다. 오늘 바울 사도는 "만일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철저히 매여 있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철저히 매인 것이 풀어질려고 하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했느냐하면 "다름 아닌 남편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로부터 풀어날려면 "아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좀 잔인한 사람들은 자기가 매인 그 사람에게서 자유를 얻기 위하여 살인을 저지르기도하는 것을 매스컴을 통하여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남편으로 비유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 남편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한 번 짓고 나면 그 후로는 이미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하자는 대로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이끄는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거짓말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박종훈이라는 영화배우가 있는데 그가 한번은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나이를 두살쯤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살 더 먹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살 더 먹은 친구의 친구들 중에는 또 한두살 더 먹은 사람들과 친구 사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두살 더 먹은 것이 대수나 그냥 친구하자 그렇게 된 것이구요. 나중에 보니까 너다섯살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들하고도 친구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된 친구관계가 언제까지 유지가 되겠습니까?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되고 거짓이 들어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율법입니다. 율법이란 남편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완전한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율법에 매이면 모두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제도도 있고 회개의 기회도 있으나 그것도 일회적인 것이고 뒤돌아서면 또다시 율법을 범하게 됨으로 나중에는 자포자기를 하게 되고 남달리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자만과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외식주의이며 형식주의 입니다. 외식남편, 형식남편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은혜로 시작했다가 얼마 못가서 형식주의에 빠지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에 물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아입니다. 자아남편을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의 남편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 있으면 우리 자신에게 매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것들을 남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죄가 살아 있고 율법이 살아 있고 형식주의와 외식이나 자아가 살아 있으면 자유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들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그 죄의 값을 지불하는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죽음에 내가 법적으로 연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율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서야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이 그 율법에 의하여 정죄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문에 속한 율법을 그의 복음과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다.

  외식과 형식주의에 빠지거나 자아가 강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을 려고 하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나 율법이나 외식이나 형식주의와 같은 옛남편에게서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죽어주셨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시 시집을 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이처럼 매인 여자가 남편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아내에게는 이혼할 권리조차도 없었습니다. 요즈음엔 이혼이라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지만 그것도 전적인 자유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옛남편이 죽고 이제 새 남편에게 시집간 신부들입니다. 옛남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남편이었으며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런 없으니만 못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옛남편이 죽고 새 남편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 남편은 옛남편과 같지 아니한 아주 좋은 남편이시며 아내 밖에 모를 그런 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