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열매의 비유(마 7:15-20) 본문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말씀은 "열매의 비유"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마다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 나쁜 나무에 나쁜 열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자연의 충실한 법칙입니다.
나무에는 그 나무의 독특한 DNA가 있어서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나무의 성질에 따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치를 설명하시면서 나무이야기나 하자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즉 사람은 그 행실로써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 속에도 그 사람의 DNA가 있어서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선한 것을 품고 있기 때문에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마음에 믿음의 DNA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아놓은 악으로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그 마음에 불신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불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훈하시고 가르치신 진리는 추상적이어서 이해나하고 지식으로나 쌓으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들어서 행해야 하는 것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들이 있습니다. 참된 것은 우리가 좇아가도 되겠지만 거짓된 것은 경계하고 조심하여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그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알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지적하셨습니다. 열매를 보아서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는 그렇게 쉽게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는 시간도 있고 열매가 맺혀 자라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동이 먼저 나가면 결국 열매를 보지 않고 결정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생각해보고 판단해보고 줄로 재어보는 그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좋다 좋지 않다를 결정해버리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그 분명한 열매가 드러나기까지 지켜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단을 한자로 쓰면 (다를)"이(리)"자에 (끝) "단"자를 씁니다. 처음도 같고 중간도 비슷한데 끝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끝 즉 열매를 볼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단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 중심이 아닙니다. 제가 그토록 목이터져라 가르치고 설교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중심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다른데 중심이 있습니다. 혼합된 것을 좋아합니다.
둘째는 편파적이며 획일적이고 한가지 측면면만 강조를 합니다. 흑백론리에 갇혀 있습니다.
셋째 독선적이며 교만합니다.
언제나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기존의 것을 부인하고 부정해 버리고 자기들만 옳다고 합니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첫 인상이나, 모양새나 외모로 쉽게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함께 부딪쳐 살다보면 그 본 모양 즉 열매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상이 참 좋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모가 곱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양을 낼줄도 몰라서 촌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진주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지내놓고 보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돈 빌려주고 아직도 받지 못한 사람은 인상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 사는 지혜가 별로 없습니다. 어린 청소년시절부터 신학공부를 하고 교회에서만 살아서 세상에서의 권모술수와 속고 속이고 하는 그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교회 안에서만 생활을 하지만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많은 시간을 교회 밖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반드시 거짓된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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