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좁은 문의 비유(마7:13~14) 본문

비유의 복음

좁은 문의 비유(마7:13~14)

유앙겔리온 2010. 12. 9. 18:51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좁은 문의 비유"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의 차이는 좁은 것과 넓은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좁다는 것은 아무나 가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찾는 무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며 적은 무리가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댓가를 치루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며 길입니다. 그러기에 들어가고 나면 뿌듯하고 자랑의 면류관이 됩니다. 그러나 넓다는 것은 서로 가려고 하고 찾는 무리가 북쩍거리며 많은 무리들이 그 곳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댓가 없이 들어가는 문이며 길입니다. 넓은 문은 임시변통으로 당장에 들어가기에 넓고 편한합니다. 그래서 들어가고도 후회하고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됩니다.

 
  대박을 향하여 모두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박이 어디 많은 줄 아십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악한 마귀와 거짓된 사람들은 대박을 터트릴 건수가 많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으면 그것은 결코 대박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의 바로 다음인 마7:15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했던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 노략질하는 이리떼를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넓은 문을 소개하고 넓은 문으로 안내하는 이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생명에 있지 않고 사망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어떻든 좁은 문과 넓은 문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강압적으로 좁은 문으로나 넓은 문으로 밀어넣는 이가 없고 자신 스스로가 그 문을 선택하여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속이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이는 지혜로워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선물로 얻고 어떤 이들은 미련스러워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넓은 문으로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선택적이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압적이고 억지로 맡기는 것이라면 불평도 있을 수 있고 핑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이며 넓은 문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누구를 핑계할 수 가 없으며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문과 길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넓은 문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으며 또한 좁은 길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 후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며 선택의 결과를 묵묵히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택 후에 변명꺼리를 찾아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보고 선택할 것입니까? 현재를 보고 선택할 것입니까? 미래를 보고 선택을 할 것입니까?
물건하나 선택할 때도 그렇고 사람을 선택할 때도 직장을 선택할 때도 이것이 가장 우선하여 고려되어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넓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은 사실 과거나 현재를 보고 선택한 것입니다. 넓은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다시말하면 쉬운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무들도 많은 길이었습니다. 외롭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쉽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문입니다. 


  과거나 현재를 위해서 선택했다가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지난 감정적 문제 때문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든지 과거의 원한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일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바꿀 수 없는 과거는 흘려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육체의 쾌락을 채우는 길은 현재를 위해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질병과 가난과 고통만이 그에게 있을 뿐입니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을 보고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가치를 보고 선택할 것이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에 끌려서 보이지 않는 것에 물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미래를 보고 선택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선택한 것입니다.
현재는 좁고 그 길이 협잡하여 찾는 이가 없는 불편하고 외롭고 쓸쓸한 문이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생명을 얻는 길임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미래를 잘살기위하여 현재 근검 절약하고 미래에 성공을 위하여 현재를 도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현재는 비록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들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앞날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하면서 현재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사는 사람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들어가기가 쉬운 문을 선택할 것이냐 어려운 문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들어가기가 어려운 문은 그만큼 보상이 큰 것입니다. 고시가 어려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사법고시가 가장 어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빨리 직급이 올라가고 권세가 주어집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얻은 것은 권세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것은 결코 쉽게 잃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권세도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성도들은 무엇을 쉽게 얻을 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어렵게 얻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잘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유명해지고, 권세를 얻고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함께 무리를 지어서 떼를 지어서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 홀로 라도 꼭 가야할 이유가 있어서 가는 길을 가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장바구니들고 시장 가니까 친구따라 지게지고 시장가는 자기 주관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넓은 문과 넓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어떠한 유혹이 있어도 꿋꿋하게 제 길을 갈 수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