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새와 백합화의 비유(마태복음 6:25~34) 본문
오늘 주시는 새와 백합화의 비유는 "염려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비유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인생살이가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염려에 빠질려고 하면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염려투성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도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아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늘에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들어서 염려 많은 우리 인생들에게 교훈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에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염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가 염려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백합화가 염려를 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랑하셔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염려라고 번역된 단어는 "찢어 떼어내다"라는 뜻이며, 염려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worry)는 "목을 졸라 죽이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앵글로섹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라는 말은 찢어떼어내고 목졸라 죽이는 것과 같은 좋지 않는 생각이란 뜻입니다. 염려는 그 성격적으로 파괴적입니다. 염려는 기만적입니다. 염려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피조물을 보살피는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염려는 죄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발전을 하고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하면 그것처럼 바람직스러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다 좋은 생각만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나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은 줄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되기도 합니다. 좋지 않는 환청과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형수의 고백에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죽이라 죽이라 환청이 들려서 그래서 순간적으로 살인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우울증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염려도 습관이라는 것을 알야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습관적으로 염려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도 않는데 가만히 앉아있으면 좋지 않는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러나보면 기력이 다 빠져나가버리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의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질병이 들어와도 싸울 기력이 없는 것입니다.
같이 있으면 금방 물이 듭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는 믿음도 빠져나가버리고 붙잡았던 끈도 놓아버리게 됩니다.
염려의 습관에서 해방되시고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염려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염려한다고 올 것이 안 옵니까? 안 올 것이 옵니까?
인간은 소용없는 염려와 걱정을 할 때가 많습니다. 쓸데 없는 걱정과 근심을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 때문에 염려해서는 안됩니다. 자족함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감사, 부하면 부한대로 감사, 병들면 병든대로 감사,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명약입니다. 자족함이 명약인 것입니다.
유명한 의사 알버스( Dr.W.C. Aivarez)라는 분에 의하면 임상실험 결과 위병의 80%가 신경성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문둥병의 60%도 정신적이며 류마치스 관절염까지도 정신적이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런던 암센터에 입원한 250명의 암환자 중에 암이 발생하가전 극심한 정신적 혼날과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는 환자는 단지 19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염려라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염려의 폐해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염려를 이기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생각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하게 사랑하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 안에 있는 양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하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넉넉히 체워주십니다. 이것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할 때도 이 일의 주인이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이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는 신앙고백을 할 때, 주님께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 천국의 영쇠를 주셔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성도는 반석같은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성도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신 성도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 한마리도 저렇게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도 저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돌보아주시지 아니하겠느냐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게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화의 생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놓고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면 염려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일시적인 것들에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항상 근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영원한 것에 고정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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